그날 박 씨의 고생은 비행기를 타자마자 시작됐다. 출발 자체가 늦었다. 비행기에 짐을 실은 손님 가운데 한 명이 출발예정시간이 지났는데도 탑승하지 않아 해당 승객의 짐을 내린 이후에야 출발했기 때문이다. 짐 주인이 타지 않을 경우 해당 짐에 폭발물 등 위험물질이 있을 가능성 때문에 짐을 내리게 한다.
또한 이륙한 지 세시간 가량 지났을 때는 비행기에 문제가 생겼다며 다시 인천공항으로 되돌아갔다.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이 들어와 기장이 회항한 것인데, 자세한 안내를 하지 않고 비행기 문제로 돌아간다는 얘기만 해 박 씨는 불안에 떨어야했다. 이후에도 대체기 투입 등의 문제로 인천공항에서 6시간을 보낸 이후에야 재이륙했다.
이달 초 업무차 터키와 카타르 등을 다녀온 김기정(51) 씨는 출국 전 여행사로부터 항공사별 수하물 관련 안내를 받고 고개를 갸웃했다. 김 씨의 스케줄은 대한항공·터키항공·카타르항공·싱가포르 항공 등 모두 4개의 항공사를 이용하는 일정이었는데 비행기 화물칸에 짐을 싣는 위탁 수하물의 무료 허용량이 대한항공만 23kg이고 나머지 세 개 항공사들은 모두 30kg이기 때문이었다. 김 씨는 “대한항공을 탈 때는 할 수 없이 무료 기준을 초과한 수하물에 대해 따로 돈을 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가장 큰 불만은 유독 국적 항공사의 비행기가 늦게 출발하는 경우가 많아서다.국토교통부가 올 1월부터 6월까지 인천공항에서 매월 200편 이상의 비행기를 띄운 항공사를 대상으로 지연출발율(탑승 완료 기준 예정보다 15분 이상 지연된 경우)을 조사한 결과 22개 항공사 중 아시아나항공이 지각출발 1위를 차지했고 대한항공은 3위를 기록했다.
항공기 승객 배상소송 대리업체인 에어헬프가 최근 전 세계 72개 항공사의 순위를 평가한 결과에서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정시운항 부분에서 최저 수준의 점수(10점 만점에 대한항공 6.4, 아시아나항공 5.7)를 받아 최하위권인 66위, 59위를 각각 기록했다. 이렇게 국적 항공사의 지연율이 심각해지자 국토교통부는 올 초 항공산업과 내에 지연 담당 테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적기의 경우 항공기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셔틀버스처럼 빡빡하게 운항스케줄을 잡다 보니 청소ㆍ주유ㆍ정비 등의 이륙 준비 시간이 빠듯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며 “비행기에 타지 않은 승객을 찾아다니느라 늦는 경우도 국적기에서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비스에 대한 불만도 크다. 마일리지가 대표적이다. 에어프랑스나 델타항공 등 대부분의 외국항공사들이 자사의 비행기 예약은 물론 전 세계 호텔 예약 등에 마일리지를 쓸 수 있게 했지만, 대한항공은 칼호텔, 한진렌터카 등 그룹 계열사로만 마일리지 사용처를 한정했다. 마일리지로 예약할 수 있는 비행기 좌석도 5% 미만으로 제한했다.
무료수하물 기준도 국적 항공사가 이용자에게 불리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무료 위탁 수하 물량을 똑같이 23kg, 가방 한 개로 제한하고 있지만, 일본항공·캐세이퍼시픽항공·콴타스항공·에미레이트항공 등은 30kg으로 국적 항공사보다 넉넉하다. 특히 베트남항공은 32kg, 중국동방항공은 20kg짜리 가방 두 개까지로 더 여유 있다. 가방 개수에 제한이 없는 항공사도 많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홍보팀 민경모 차장은 “대한항공의 무료수하물 기준은 에어프랑스·영국항공 등 세계적인 유명항공사와 동일하고 에어아시아엑스보다는 오히려 더 넉넉하다”고 말했다.
이런 고객들의 불만을 처리하는 방식 또한 미흡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최근 대한항공 비행기를 탔다가 기내식에서 바퀴벌레가 발견돼 피해를 본 승객 4명은 모두 대한항공의 고객 응대 방식에 문제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인천공항을 출발해 일본 오카야마 현으로 가는 KE747 비행기 안에서 식판 주위를 슬금슬금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를 발견한 오지현(30)씨는 “대한항공 측에서 ‘몬트리올 협약’상 피해보상을 해 줄 수 없다는 얘기만 되풀이해 몬트리올 협약을 찾아보니 이 협약은 수하물 분실이나 탑승객의 신체적 부상과 관련한 내용이었다”며 “바퀴벌레 피해와는 전혀 맞지도 않는 규정을 들먹이며 피해보상을 외면하는 대한항공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외국항공사는 이런 경우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손해배상을 해 준다. 에미레이트 항공의 경우 바퀴벌레 피해 승객에서 항공사 측에서 먼저 연락해 500달러가량의 상품권 등을 제공했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