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사진관] 사자·수탉·독수리·호랑이의 싸움터, 월드컵

중앙일보

입력 2018.07.13 13:29

수정 2018.07.1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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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팀의 해리 캐인이 4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 패한 뒤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그의 가슴에 사자 세마리 엠블럼이 선명하다. [AP=연합뉴스]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진격이 4강전에서 멈췄다. 잉글랜드는 12일 크로아티아에 패해 52년 만의 결승진출이 좌절됐다. 그러나 영국 언론은 잉글랜드팀을 격려하고 있다. '더 선'은 "우리는 23명의 사자를 얻었다"고 썼다. 
 
'더 선'이 뽑은 제목은 잉글랜드 대표팀의 애칭이 '삼사자 군단'이라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사자는 영국왕실의 상징 동물인데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왕실의 허락을 얻어서 세 마리의 사자를 디자인한 엠블럼을 사용하고 있다.    
 

[REUTERS=연합뉴스]

주전 해리 캐인의 9번 넘버 유니폼을 입은 잉글랜드 축구 팬이 크로아티아에 패하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잉글랜드 사람들은 이번 러시아 대회에서 월드컵을 차지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축구가 집으로 돌아온다"(Football is coming)는 응원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잉글랜드 사자의 포효는 4강전에서 잦아들고 말았다.
 

프랑스 미드필더 포그바가 벨기에를 물리치고 결승 진출이 확정되자 기뻐하고 있다. 그의 왼쪽 사슴에 수탉이 보인다. [AFP=연합뉴스]

만약 잉글랜드가 결승에 진출했다면 사자는 수탉과 대결을 벌였을 것이다.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엠블럼이 수탉이다. 수탉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갈리아(프랑스)에서 힘과 용맹, 풍요의 상징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프랑스는 조별예선에서 세네갈을 만났는데, 경기를 앞두고 세네갈에서는 수탉 잡아먹기가 유행했다. 프랑스를 타도하자는 것이다. 세네갈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영험이 있었는지 프랑스는 세네갈에 패해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AFP=연합뉴스]

벨기에전이 승리로 끝나자 프랑스 축구 팬이 환호하고 있다. 그의 가슴에도 수탉이 선명하다. 결승에서 만날 팀은 '발칸의 호랑이' 크로아티아다. 수탉은 호랑이를 이길 수 있을까.  
 

독일의 포워드 마리오 고메즈가 한국전에서 뛰며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독일축구협회 엠블럼 한가운데에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다. 고대 로마의 군대 또는 황제의 상징이 독수리였는데, 로마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많은 나라가 국가 또는 통치권의 상징으로 독수리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문장이 독수리다.
 
독일은 10세기에 신성로마제국이 되면서 로마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독수리를 국장에 사용하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독일축구협회의 독수리는 검은 깃털을 가졌는데 이름은 파울러라 불린다.  
 

[AP=연합뉴스]

역사도 유구한 독일 독수리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검은 독수리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은 독일 축구 팬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TASS=연합뉴스]

개최국 러시아의 엠블럼은 머리가 두 개인 독수리, 쌍두독수리다. 고대 로마제국은 4세기에 수도를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에서 현재 터키 이스탄불인 비잔티움으로 옮겼다. 국가의 상징도 독수리에서 쌍두독수리로 바꾸었다. 서로마와 동로마를 모두 아우른다는 의미였다.
 
러시아제국은 종교(정교)와 문자, 정치 등 많은 부분에서 동로마제국의 계승자를 자처했다. 현 러시아 축구대표팀 가슴의 쌍두독수리 엠블럼에는 비잔틴 제국, 멀리는 고대 로마제국의 전통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TASS=연합뉴스]

그러나 러시아의 쌍두독수리도 발칸의 호랑이에게 날개를 물리고 말았다. 개최국 러시아는 선전했으나 8강에 만족해야 했다.  
 

[AFP=연합뉴스]

그러면 한국팀의 상징은? 
호랑이다. 그것도 백호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만들었고, '아시아의 호랑이'를 상징한다. 
호랑이를 가슴에 단 김영권이 독일 골문을 흔들고 난 뒤 질주하는 이 모습은 우리를 월드컵의 악몽에서 건져주었다. 
 

[EPA=연합뉴스]

2018년 러시아에서 호랑이는 독수리 날개를 물어뜯었다.
 
최정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