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회의에선 공식적인 제안은 아니었으나 GDP의 4%까지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는 당초 목표치(GDP의 2%)의 두 배로 가장 많은 비용을 내고 있는 미국(3.5%)조차 충족시키지 못한다. 현재 나토 회원국 중 GDP 대비 2% 넘게 국방비를 쓰고 있는 곳은 그리스·영국·에스토니아·폴란드·루마니아뿐이다. 프랑스(1.8%), 독일(1.2%), 이탈리아(1.1%) 등은 2%에 미치지 못한다. 2018년 한국의 국방비는 43조1581억원으로 GDP 대비 2.38%다. 트럼프의 요구를 한국에 적용해 GDP 대비 4%(72조5346억원)로 높여야 할 경우 현재 국방비에서 29조3765억원이 더 필요하다.
“한국에만 인상 요구하는 것 아니다”
미국, 나토와 같은 잣대 압박할 듯
GDP 4% 땐 한국 국방비 29조 증가
“나토·한국 수평 비교는 무리” 지적도
트럼프 정부의 동맹 때리기는 이미 한국으로도 향했다. 한·미는 지난달 서울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협의를 비롯, 올 들어 네 차례에 걸쳐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한국이 부담해야 할 액수와 항목 등을 놓고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미국이 원하는 금액이 엄청나다. 도저히 간극을 좁힐 수 없는 수준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한국의 올해 방위비분담금은 9602억원이다. 미측이 최대 두 배 정도 되는 금액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소식통은 “우리 측에서 미측에 ‘이렇게까지 많은 금액을 요구하면 접점을 찾기 힘들다’고 맞서자 미 대표단은 ‘한국에만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는 입장을 보였다”며 “나토 회원국을 압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또 “미 대표단은 한국 정부가 평택 캠프 험프리스를 조성하는 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은 방위비와는 별개라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고도 말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당시 캠프 험프리스 방문 일정을 포함시켜 한국이 책임 있는 태도로 안보 비용 분담에 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던 정부의 노력이 큰 성과를 보지 못한 셈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나토는 다자 분담금 형식을 취하는 데다 한국은 이미 분담금 비율이 50%에 근접하기 때문에 나토와 한국을 수평 비교하는 것은 무리인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에겐 그런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나토에 적용하는 잣대를 그대로 한국에 들이댈 가능성이 굉장히 크고 또 10여 년 전부터 미국 내 우파들 사이에서 같은 요구가 제기돼 왔기 때문에 우리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트럼프 정부가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진행을 이유로 주한미군 감축론을 또 꺼내들어 방위비분담금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북·미 정상회담 직후 “나는 가능하면 빨리 병력을 철수시키고 싶다.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며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해 파문을 불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놓고도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높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11일(현지시간) 오는 8월 예정됐던 UFG 연습을 중단해서 절약하는 예산은 1400만 달러(약 157억원)라고 전했다. 한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F-15K가 대당 1500억원인 만큼 이 전투기 한 대 가격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한·미는 오는 18~19일 미 시애틀에서 5차 방위비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서울=유지혜·조진형 기자 luc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