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ㆍ유승민 2선 후퇴로 잦아드나 싶었던 바른미래당 계파 갈등이 보수ㆍ진보 노선 갈등의 형태로 재점화하고 있다. 황영헌 전 바른미래당 대구 북을 지역위원장 등 바른정당 출신 원외 인사 56명은 12일 국회에서 “당의 보수 정체성을 확립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의 포용이라는 당의 정체성은 이인삼각 경기처럼 시너지를 못 내고 비척거릴 것이 분명하다”며 “어정쩡한 정체성을 버리고, 합리적 중도를 아우르는 혁신적인 보수정당임을 선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공천과정에서 보여준 구태로 인해 지방선거에 참패했으며, 선거 이후에도 무사안일한 당 운영으로 지지율이 5% 수준으로 추락했다”며 ‘김동철-김관영 투톱 체제’를 정면 비판했다. 그러면서 “바른미래당의 사명은 폭주하는 좌파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건전하고, 혁신적인 보수정당의 재건”이라고 강조했다.
성명에 참여한 한 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의 정체성 논란을 어설프게 매듭짓고 넘어가려는 현재 당 지도부에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라며 “이후에도 달라지는 게 없을 경우 더 강력한 액션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는 탈당까지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대표는 지방선거 이후 공식 일정을 최소화하며 당 상황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바른미래당이 ‘개혁 보수’의 가치를 소홀히 할 경우 유 전 대표를 포함한 바른정당 출신 인사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당에 남아있기 힘들 거란 관측이 지속해서 나온다.
8월 중순으로 예정된 전당대회의 룰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파열음이 나고 있다. 당내 다수인 국민의당 출신은 당 대표와 최고위원 분리 선출을 주장하고, 바른정당 출신은 통합 당시의 당헌ㆍ당규대로 해야 한다고 맞서면서 대립하고 있다.
바른정당 출신인 이지현 비대위원은 지난 11일 비대위 회의에서 “양당의 통합정신에 기초하고 있는 현재의 당헌조차 무시한 채 모든 것을 오로지 머릿수로 결정하자는 듯이 나오는 분별없는 주장들이 넘쳐나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며 “다수와 소수가 한배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다수가 규칙을 무시한 채 오로지 숫자로만 모든 것을 결정하려고 한다면 ‘다수결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자 ‘민주적 독재’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라고 비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