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성 평가 '패싱'?
예비타당성 조사는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대규모 공공사업 시행 전에 경제성 등을 분석하는 절차다. 문제는 2014년 이후 총 네 번의 추경에서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이다. 추 의원은 “모호한 기준을 근거로 세금 수조 원이 들어가는 사업까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건 사실상 재정 건전성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추경에서 ‘긴급한 경제ㆍ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이유로 청년 취업 지원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했다. 일례로 교통이 열악한 산업단지의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청년에게 1인당 10만원의 교통비를 지원하는 사업(당초 예산 976억원)이 예비 타당성 심사를 받지 않았다.
타당성 조사 없이 교통비 지원에 488억원
고교 3학년생이 졸업 전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약 300만원의 장려금을 지원하는 사업도 예비타당성 심사가 면제됐다. 추경을 심사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문위원들이 “사후 관리비용이 지속해서 증가할 우려가 있다”며 사업의 경제성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일부 예산이 감액됐을 뿐 국회 통과 뒤 타당성 평가 없이 시행에 들어갔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는 국무회의를 거쳐 정부가 일차적으로 결정한다. 이후 국회 상임위에 보고돼 최종 결정된다. 상임위에 참가하는 야당도 면제 결정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이번 추경의 경우 드루킹 사건으로 국회가 공회전하면서 추경을 논의할 시간이 별로 없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가 적절한지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세수 상황 언제 나빠질지 몰라”
여당은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 ‘돈을 더 쓰라’고 압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고용 상황이 나쁘다.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 같은 달보다 10만6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취업자 수 증가 폭이 10만명대 이하에 머문 기간이 5개월 연속 이어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재정이라는 ‘실탄’을 써서 고용률을 높이자는 게 여당의 구상이다. 특히 세수 상황이 나쁘지 않아 예산 증액에 부담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부동산 시장 호황 등의 영향으로 국세 수입이 2016년엔 11%, 지난해엔 9% 증가했다. 올해도 5월까지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17조원 늘었다.
그러나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현재의 세수 호황은 상당 부분이 부동산 양도세 증가 때문인데 당장 내년이면 세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회성 사업에 예산을 증액하면 재정 부담이 크지 않겠지만, 앞으로 계속 지출해야 하는 복지 예산 등을 늘리면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재정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