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일주일 전 TV토론에서 당시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여성 정책은 각 부처가 조직을 확대하면 된다. 여성가족부는 폐지해야 한다”고 하자 문재인 후보는 “(정부의 여성 정책이) 충분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으니 전체를 다 꿰뚫는 여성가족부가 필요하지 않나. 오히려 여성가족부 장관을 남성으로 임명하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여성 장관 비율 28% 역대 최고
몰카 범죄 엄단 등 정책 폈지만
탁현민, 여성신문과 소송 벌이고
송 “행동거지” 발언에 여성 분노
지난해 12월 청와대가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뽑은 전문임기제 직원 6명 전원도 여성이었다.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당시 “그동안 관행대로라면 이런 결과가 안 나왔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 범죄 대응에도 적극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국무회의에서 “몰래카메라 영상물을 유통시키는 사이트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하고 영상물 유포자에게 기록물 삭제 비용을 부과하는 등 전방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시했다. 이후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선물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도 읽었다고 한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의식을 대중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이처럼 역대 정부와 비교해 가장 친여성적 성향을 보이지만 최근 여성계가 문재인 정부에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발단은 지난 3일 국무회의 발언이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홍대 몰카 사건 수사가 남성보다 여성에게 가혹한) 편파수사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 남성 가해자가 구속되고 엄벌이 가해지는 비율이 더 높았다”고 했다.
여성학자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이) ‘편파수사’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며 “여성들의 구조 전반에 대한 분노를 청와대 측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청와대 청원 게시판엔 ‘페미니스트 문재인은 사과하라’는 글이 올라왔다.
7일 혜화역 시위에서도 일부 참석자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해서 여성 표를 가져간 뒤 우리를 실망하게 했다”고 외쳤다.
또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여성신문의 기사로 피해를 봤다며 여성신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10일 법원이 “원고(탁현민)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자 일부 여성운동가는 “너무 화가 나는데 놀랍지는 않다”(여성학자 권김현영)고 반발했다.
지난 9일에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각 군의 성(性)고충 전문 상담관과 간담회를 하면서 “여성들은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해 논란을 자초했다. 페미니즘 정부를 표방했는데 외려 말 한마디에 여성의 신뢰를 잃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장필화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이번 정부는 역대 정부와 비교해 여성의 목소리에 가장 귀를 기울일 것 같은 정부로 보여진다”며 “그래서 기대가 큰 만큼 비판의 목소리도 크게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허진·김준영 기자 b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