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장관은 방북을 마친 후 8일 도쿄에서 “비핵화와 안전보장, 관계개선을 동시에 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경제제재는 비핵화가 완료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란 입장을 고수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경제제재를 제외한 체제 보장과 관계개선은 동시·병행한다는 보상 원칙을 천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의 ‘단계적 동시행동’ 원칙을 일부 수용한 게 된다.
첫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뒤 이번에는 과거의 비핵화 협상과는 다르다는 전망이 잇따랐다. 정상이 만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한 뒤 밑으로 내려보내는 ‘톱다운’ 방식이라서다. 미국 행정부 당국자들은 톱다운 방식을 강조하며 비핵화 속도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실무그룹 간의 줄다리기가 재연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미 국무부는 ‘포스트 싱가포르’를 위한 워킹그룹을 구성했다고 8일(현지시간) 밝혔다. 비핵화 로드맵 도출과 핵시설 리스트업, 사찰·검증 등 단계별 대응 방안에 대해서도 향후 워킹그룹을 중심으로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6~7일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방북했던 알렉스 웡 동아태 부차관보, 벤 퍼서 국제안보ㆍ비확산담당 부차관보, 마크 램버트 한국담당 부차관보 대행(한국과장) 등이 포함됐고, 판문점 실무회담을 이끌어온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를 뒷받침할 예정이라고 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이번 북ㆍ미 협상은 (정상 간 먼저 합의하는) ‘톱다운’ 방식으로 특수성을 강조했지만 사실상 실무협상을 위한 워킹그룹을 만들어 ‘보텀업(Bottom-up)’ 방식으로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워킹그룹이 건건이 합의안을 만들어 보고하는 방식을 취하면 톱다운 방식보다는 시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한편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평양을 찾았던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임무센터장은 한국에 입국해 서훈 국정원장 등을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6~7일 폼페이오 장관 일행의 방북 결과를 한국과 공유하는 한편 북측이 내놓은 강경한 반응에 대해 대응책을 함께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