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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손흥민 군대 가라’ 슛

중앙일보

입력 2018.07.09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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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스포츠팀 차장

2002년 10월 10일 밤,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한국과 이란의 준결승전을 취재했다. 연장전까지 비긴 두 팀은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이란의 네쿠남과 한국의 이동국, 그리고 이란의 카비까지 모두 골문을 갈랐다. 그다음인 한국의 이영표가 힘껏 내지른 공은 크로스바에 맞고 밤하늘을 갈랐다. 이란이 5-3으로 이겼다. 이영표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 진출로 병역 면제를 받은 상황. 월드컵에 나가지 못한 이동국은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도 실패하면서 이듬해 2월 입대했다. 밤하늘을 가른 그 슛이 ‘이동국 군대 가라 슛’이다(한국이 3~4위전에서 태국을 꺾으면서 이동국은 동메달리스트가 됐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다음달 18일 개막한다. 아시안게임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주위를 봐도 별 관심이 없다. 단 한 가지, 축구와 야구 대표선수의 병역 문제를 빼고 말이다.
 
이번 아시안게임 축구 관전 포인트는 ‘손흥민의 병역’ 하나뿐인 것 같다. 손흥민은 부정할 수 없는 한국 현역 선수 ‘원톱’이고,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와일드카드(23세 초과 선수)’ 3명에도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모든 걸 제치고 ‘손흥민의 병역’만 거론되는 상황이 불편하다. 나머지 22명은 뭔가.
 
한술 더 뜨는 건 야구다. 지난달 선동열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이 아시안게임 대표선수 24명을 공개했다. 전문가도, 팬도 반응이 싸늘했다. 선 감독은 그전까지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참가자에게 우선권을 주겠다” “최근 잘하는 선수를 뽑겠다” “같은 실력이라면 어린 선수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식언했다. 팬들은 몇몇 선수를 거론하며 “꼭 은메달을 따주기 바란다”고 조소하는 실정이다. 선 감독은 아니라지만 사회인 선수가 출전하는 일본이나 리그 수준이 한 수 아래인 대만의 전력을 고려할 때 금메달, 즉 병역 면제는 떼어 놓은 당상인 분위기다. 그러니 대표 선발부터 저 모양이 아니겠는가.


서둘러 병역법을 개정하자. 올림픽 메달이나 아시안게임 금메달 한 번으로 병역을 면제받는 현 시스템을 고치자. 다양한 국제대회를 추가하되 대회 난이도에 따라 포인트를 차등 부여하고, 일정 포인트를 쌓고 병역을 면제하는 제도로 말이다. 그래야 올림픽 에서 4위를 한 선수나 아시안게임 은·동메달 리스트도 웃을 수 있고, 병역 면제를 받고는 현역 선수로 뛰면서 “국가대표를 은퇴하겠다” 소리도 안 하고, 혹시 아시안 게임 준결승전에서 누군가 ‘손흥민 군대 가라’ 슛을 하더라도 손흥민이 울지 않을 테니까.
 
장혜수 스포츠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