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혈압 약에 발암물질? 혈압 오르는 600만 환자들

중앙일보

입력 2018.07.09 00:38

수정 2018.07.0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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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연구에서 혈압을 120까지 낮추는것이 합병증 등 발병 위험 낮추는 것으로 나왔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한 고혈압환자가 혈압을 재고 있다. [김상선 기자]

고혈압 치료제의 원료인 ‘발사르탄’에서 발암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확인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해당 원료가 들어간 제품 219개에 대해 잠정적인 판매중지, 제조·수입 중지 조치를 했다. NDMA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가 2A(사람에게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 등급으로 분류한 물질이다. 식약처는 “이번 잠정 조치는 해당 제품의 NDMA 검출량·위해성에 대해 확인되지 않았지만 소비자 보호를 위한 사전 예방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약처의 이번 조치는 유럽의약품안전청(EMA)이 지난 5일 중국 제약회사인 ‘제지앙 화하이’사가 제조한 발사르탄에서 NDMA가 검출됐다는 사실을 알린 뒤 시행됐다. EMA는 중국산 원료가 들어간 제품들을 판매 중지·회수 조치했다. EMA는 최근 제지앙 화하이 측이 발사르탄 제조 방식을 바꿨고, 이 때문에 불순물이 섞인 것으로 보고 있다. EMA는 “현재 이 문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발사르탄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산 발사르탄서 유해물질 검출
식약처, 82개사 219개 제품 판매중지
2.8% 차지, 중국산 아닌 건 괜찮아
환자들 “매일 약·독을 함께 먹은 셈”

발사르탄이 들어간 모든 약품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발사르탄은 원래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성분으로 ‘디오반’이라는 제품명으로 판매된다. 2012년 특허가 만료되며 수백 개의 복제약(제네릭)이 등장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발사르탄 성분 제품은 여전히 디오반이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265억원어치가 팔렸다. 전체 고혈압 치료제 가운데 3위다. 디오반을 비롯해 중국산 원료를 쓰지 않은 대다수 발사르탄 성분 약은 발암물질과 무관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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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미 식약처 의약품관리과장은 “국내 허가받은 혈압 강하제(고혈압 치료제)는 2690개인데 이 중 발사르탄 성분이 들어간 제품은 571개다. 그중 219개에 중국산 발사르탄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며 “현지 조사와 자료 분석을 통해 실제 문제 있는 제품을 가려내면 219개보다 더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체 발사르탄 총 제조·수입량은 48만4682㎏이다. 문제의 중국산 발사르탄은 이 중 2.8%(1만3770㎏)다. 식약처는 7일 제약회사 82곳에 현지 조사를 나가 불순물 발생 원인과 시기 등을 분석하고 있다.
 
식약처의 발표 이후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해 온 600만 고혈압 환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만성질환 특성상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하기에 발암물질에 대한 환자들의 우려가 더 크다. 고혈압 환자 A씨는 “몇 년째 매일 고혈압 약을 먹어왔는데, 매일 약이랑 독을 함께 먹은 셈이냐”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A씨는 판매 금지된 약 가운데 하나를 지난해 초까지 2년여 복용했다. 그는 “병을 고치려고 챙겨 먹은 약에서 발암물질이 나왔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고혈압 환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당장 약을 먹어야 하냐, 말아야 하냐” “다른 약은 안전한 거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오범조 서울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당장 치료제 복용을 중지하면 뇌졸중·심장마비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다른 약을 처방받을 때까지는 약을 제때 먹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상우 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들은 자기가 먹는 약이 문제인지 아닌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의약품 사고 발생 시 해당 환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대처 방법을 안내하는 등 복약관리시스템을 정교하게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7일 오후 9시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DUR)’ 시스템에 판매금지 대상 약품을 입력하면 ‘처방 금지’ 경고 문구가 뜨도록 했다. 문제 약품이 유통되지 않도록 의사가 약을 처방하는 단계부터 원천 차단했다. 또 DUR 시스템을 통해 개인 투약 이력을 확인해 개별적으로 알려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문제 제품을 이미 처방받은 환자들이 새 약품으로 다시 처방받는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했다.
 

잠정 판매 중지 및 제조 중지 의약품 제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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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