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 빠진 저출산 대책 한계점
‘부모·아이 삶의 질 개선’ 표방했지만
전 정부 정책서 대상·금액만 늘려
추가로 투입하는 예산도 9000억뿐
전문가 “비전 제시 없는 안일한 대책”
하지만 7개월 만에 나온 저출산 대책에 ‘패러다임의 전환’은 눈에 띄지 않았다. 전 정부 정책의 대상자를 확대하거나 지원 금액을 인상하는 미세 조정에 그쳤다.
주요 대책으로 제시한 아이돌보미 지원 대상 확대·정부 지원 강화, 임금 삭감 없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배우자 유급출산휴가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그간 1~3차 대책에서 예산 가능 범위 내에서 조금씩 확대해 왔는데, 이번에도 그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아이돌보미 지원은 대상을 늘렸다. 정부가 보증하는 아이돌보미를 가정에 파견하는 서비스의 지원 대상을 중위소득 120%(3인 가구 월 442만원)에서 중위소득 150%(월 553만원)로 늘린다는 내용이다. 만 8세 이하 아동에 대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은 상한선을 올렸다. 배우자 유급출산휴가는 기간을 늘렸다.
전 정권과 차별화를 강조하다 보니 목표를 잃어버렸다는 지적을 받는다. 위원회는 “지금까지는 출산율과 출생아 수가 정책의 목표였지만 앞으로는 2040세대 삶의 질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1억 총활약 정책’의 목표를 출산율 1.8로 잡고 있다. 게다가 이날 발표된 정책은 모두 출산과 영유아기 자녀 육아 지원에 집중돼 있다. 반면에 여성들의 경력 단절, 출산 포기를 부르는 초등학생 돌봄 절벽 문제에 대해서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4월 제시한 ‘온종일 돌봄’ 정책은 별 진전이 없다.
형평성 논란을 부를 정책도 포함됐다. 위원회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단시간 근로자, 자영업자, 특수고용직에게 90일간 월 50만원의 출산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국비로 지원하되 고용보험을 통해 신청을 받고 지급한다. 고용보험료를 내지 않는 이들에게 가입자와 같은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사각지대 해소 취지라면 고용보험 가입을 유도해야 하는데 이런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말하는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방향 자체는 잘 설정했다고 본다. 하지만 너무 이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다 보니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이라 본다”며 “저출산 대책을 재구조화하려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데, 정책은 빨리 내놓을 수밖에 없으니 기존 것을 답습했다”고 지적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메시지가 정책에 담겨 있지 않다. 특히 성평등 관점이 빠져 있다. 여성 입장에서 이제는 ‘독박육아’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겠구나, 또는 내가 아이를 낳으면 남편 집안의 아이가 아닌 나의 아이가 된다는 식의 뭔가 다른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중장기적인 대책은 제3차 기본계획을 재구조화 정책에 포함해 10월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스더·정종훈 기자 etoil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