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제의 작업실에 가 보니 5000여개의 도장이 있었다. 불교 연구가이기도 한 그는 모두 5174자로 이뤄진 금강경의 글자들을 한 글자씩 새겨 같은 숫자의 도장을 제작했다. 이 도장들이 화가 왕제의 붓을 대신한다. 그는 주로 정치인이나 역사 속 인물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눈에 비친 시대상을 화폭에 담아낸다. 특수제작된 인주를 정성껏 묻힌 뒤 강약을 조절해가며 금강경의 글자 한 자씩을 화폭에 찍어냄으로써 사람의 얼굴 형상을 그려내는 왕제의 작업 과정은 금강경의 지혜와 철리(哲理)를 작품의 대상 인물에 부여하는 종교 의식과도 같다.
탁인 기법으로 완성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얼굴이다. 왕제는 “최근 한반도 정세가 급변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커다란 감흥을 받고 남북 지도자 두 사람을 그리게 됐다”며 “사람의 힘과 지혜로 수십년간 고착된 역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중국인 이외에는 오바마, 푸틴 등 서양인을 많이 그렸는데 한국인이나 조선인을 그린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전시에 이어 평양에서의 전시 계획은 없냐는 질문에 “북한 지도자를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을 지금의 북한 체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북한이 진정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선다면 예술에 대한 관용도 생겨날 것이므로 5년쯤 뒤에는 전시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중국 화가 왕제 "한반도 정세 변화에 큰 감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