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올해의 선수상’을 공동 수상한 두 선수의 대결이었다. ‘바람의 도시’ 시카고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초반부터 리더보드가 흔들렸다. 박성현은 유소연과 4타 차이가 나는 3위로 챔피언 조에서 경기했으나 곧 접전이 됐다. 유소연은 2번 홀에서 더블보기를 하고 박성현은 3, 4번 홀에서 버디를 잡으면서 동타가 됐다.
16번홀 두번째샷 물가 깊은 러프에 빠져
언플레이어볼 대신 로브샷, 파로 막아
2차연장 끝 유소연 울리고 메이저 2승
유소연 "17번 홀 다시 티샷했으면"
2타차 선두 지키던 유소연 17번홀 불운
티샷 바람에 밀리며 물에 빠져 더블보기
16번 홀이 하이라이트였다. 왼쪽 호수가 페어웨이 곳곳으로 파고 든 물이 많은 이 홀에서 박성현의 티샷은 뒷바람을 타고 너무 많이 나갔다. 공은 물가 내리막 러프에 멈췄다. 길면 러프, 짧으면 해저드인데 내리막 라이에 러프 속이어서 이도 저도 쉽지 않았다. 호수 너머에 있는 핀을 향해 쏜 박성현의 두번째 샷은 짧았다. 그린 주위 경사를 맞고 물 쪽으로 굴러 내려왔다.
공은 해저드 라인 안으로 들어갔다. 물 속에 잠기지는 않았지만 바로 물가였고 러프는 매우 길었다. 1998년 US오픈 연장전 18번홀에서 박세리가 빠진 물가 러프, 이른바 '맨발의 투혼' 못지 않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언뜻 봐서는 언플레이어블 볼을 선언하는 것이 더 나아 보였다.
박성현은 캐디와 함께 유심히 상황을 살폈다. 캐디는 물 속에 들어가서 공의 상태를 봤다. 결국 그냥 치기로 결정했다. 박성현은 이를 악문채 클럽을 짧게 잡고 힘껏 로브샷을 쳤다. 공은 높이 떴다가 핀 주위에 부드럽게 착륙했다. 평소 액션이 거의 없는 박성현이 주먹을 불끈 쥘 정도로 멋진 샷이었다.
유소연은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 2타 차 선두로 나섰다. 그러나 박성현도 천금 같은 파 세이브를 하면서 추격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기회가 왔다. 유소연은 물을 건너는 파 3인 17번 홀에서 티샷이 바람에 밀려 물에 빠졌다. 더블보기가 나왔다.
18번 홀에서 치러진 연장 첫 홀에서 유소연의 두 번째 샷이 좋지 않았다. 그린 오른쪽 끝에 있는 핀을 공략한 유소연의 샷은 오른쪽으로 밀려 물에 들어가는 듯했다. 유소연은 또 다시 물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에 탄성을 질렀다.
박성현이 어려운 파 세이브에 성공한 16번홀에서 두 번째 연장전이 벌어졌다. 유소연은 약 7m, 박성현은 약 2.5m 버디 기회를 맞았다. 두 선수가 그린에 왔을 때 썬더스톰이 와 경기가 잠깐 중단됐다. 10여분 후 재개된 경기에서 유소연의 버디 퍼트는 홀을 외면했다. 박성현의 버디 퍼트는 홀에 들어갔다. 박성현은 울었다.
박성현은 경기 후 “오늘 보기가 없이 모든 것이 잘 됐다. 잘 참고 기다렸다. 정말 기쁜 날이다. 지난해 US여자오픈 우승하던 장면을 생각하면서 경기했다”고 말했다. 16번 홀 상황에 대해 “굉장히 당황했다. 캐디가 '반드시 이 홀에서 파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을 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캐디가 '공 밑에는 물이 전혀 없으니까 자신 있게 하면 된다'고 한 말이 굉장히 힘이 됐다. 그래서 좋은 샷이 나왔고 연장전에 갈 수 있었다. 정말 중요했던 샷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주 생일을 맞았던 유소연은 “(더블보기를 한 17번 홀에서) 바람이 왼쪽으로 너무 강했다. 그 것만 아니면 이번 주는 내 인생에서 가장 뛰어난 퍼포먼스였다. 박성현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유소연은 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17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싶은데, 그때 결정했던 것은 내 최선이었다.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지 굴지 않고 힘을 불어 넣으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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