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길을 묻다 ③
한국 보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대선 패배, 지방선거 참패보다 북한의 변화와 이에 따른 동북아 정세 대변동이 야기하고 있는 국가안보의 위기, 체제위기가 더 근본적인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국내 정치 실패의 후과(後果)는 몇 년 안 갈 수 있겠지만, 외교·안보 실패는 수백 년 동안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그것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이 가르쳐준 뼈아픈 역사의 교훈이다.
북한 주도로 동북아 정세 대변동
북핵 때문에 국가와 체제에 위기
보수, 과거 세력으로 인식돼 참패
변화에 맞는 국가전략 수립해야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핵보유국 전략이 마지막 단계에 진입했음을 웅변하듯 보여줬다. 북한은 90년대 초 사회주의권 붕괴와 한·중 수교라는 최악의 위기 상황에 직면하자 체제 생존전략으로 선군(先軍) 사상에 기초한 ‘핵 국가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이에 따라 2016년 1월의 4차 핵실험 성공 직후 무려 36년 만에 열린 노동당 7차 당 대회에서 핵보유국을 선언했다. 2017년 9월의 6차 핵실험과 11월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시험 성공으로 동북아 정세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러한 북·미 간의 역사적 대전환에 대응해 중국은 전략가 왕후닝(王滬寧) 정치국 상무위원 주도로 6·19 북·중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중국의 대미 전략에서 핵심 주자로 부상한 북한을 중국 편으로 견인하기 위한 외교전이다. 이는 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의 북한에 대한 상대적 경시 전략이 근본적으로 전환될 것임을 선언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연이은 북·미 및 북·중 정상회담은 북한이 동북아에서 실질적인 핵보유국이자 전략 국가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 중대 사건이다. 90년대 초 남북 체제경쟁은 한국의 승리로 여겨졌으나 이제 새로운 수정 국면, 즉 제2의 남북 체제경쟁 국면으로 전환했다고 봐야 한다.
북한발 동북아 정세 대변동과 북·미 및 북·중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한반도 정세에 변화의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는 80년대식 냉전 시대의 안보관과 대북관 수준에서 종북몰이에 집착하고, 남북 및 북·미 협상의 발목잡기 행태를 보임으로써 국민에게 시대에 뒤처진 과거 세력으로 낙인찍히게 됐다. 보수·진보 차원을 넘어서 낡은 과거 세력으로 인식된 것이 보수 참패의 핵심 원인이다.
보수가 새로운 길을 정립하려면 세 가지를 특히 유념해야 한다. 첫째, 북한의 변화로부터 시작된 동북아 정세의 대변동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기초해 새로운 국가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국 및 전략국가화의 의미,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의 차이, 핵·경제 병진 노선 승리와 경제건설 집중노선의 의미 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에 대해 냉전 시대적 관념이 아니라 21세기 민족국가 간의 무한 국익 경쟁이 이루어지는 국제질서 조건에서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를 기초로 외교·안보·통일 전략에 대한 새로운 처방전을 내놓아야 한다.
둘째, 민족국가 공동체에 대한 무한 책임감이 요청된다. 이승만과 함께 김구를 존중하는 자세, 박정희와 함께 김대중의 역할을 평가하는 자세, 북한의 미래를 진정으로 함께 책임지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역사의 섭리 및 신의 섭리를 존중하는 보수주의자의 태도가 있어야 새로운 남북 체제경쟁 국면에서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보수의 가치를 세우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핵을 가진 북한, 정치적으로 강력한 노동당을 앞세운 북한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핵심으로 하는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천이 필요하다. 책임 있는 변화(Prudent Change)의 관점에서 보수의 안보관을 정교하게 대수술해야 할 때다.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고려대 북한법 박사)
◆ 알림=보수의 재탄생을 모색하기 위한 기획 시론 ‘보수의 길을 묻다’를 시리즈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