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길을 묻다 ②
‘30년 혁명 주기의 법칙’. 박노해 시인은 지난 촛불 혁명의 역사를 정리한 김예슬의 ‘촛불 혁명’ 서문에서 혁명에는 30년 법칙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30년은 20대 청년이 시대의 모순과 투쟁하는 15년, 그리고 그 성과를 주류 사회로 펼쳐가는 15년의 합이다. 30년 혁명의 성과를 이루면 그 세대는 점차 굳어지고 보수화된다.
새 시대 정신은 공정·정의·평화
이 안에서 보수의 새 가치 찾아야
진보보다 더 공정한 보수를 꿈꾸고
젊은 세대와 전문가 전진 배치해야
촛불 체제라는 정치 질서의 성격과 경계선을 둘러싼 정치세력 간의 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 경쟁에서 한발 앞서가 있다. 하지만 새 질서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기에 다른 세력들도 자신들의 몫이 있다. 새로운 보수라면 공정·정의·평화라는 이 세 가지 시대정신의 경계선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가치와 어젠다를 만들어야 한다.
전혀 다른 정치 질서의 개막에는 그에 걸맞은 대담한 ‘전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진보보다 더 공정함을 추구하는 대담한 보수를 꿈꾸어야 한다. 솔직히 ‘공정한 보수’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물과 기름 같은 언어의 조합처럼 들린다.
진짜 보수란 이런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경악하며 자신들의 소심함을 한탄하게 하는 어젠다를 제시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진짜 미국의 보수다.
아예 지금의 짜인 판을 흔드는 어젠다로 한국 보수가 첫발을 내딛는 건 어떨까. 필자는 보수가 아예 연방제적 수준의 분권화 개헌으로 촛불 혁명의 영구화를 유도하는 것도 제안한다. 물론 이는 문재인 정부의 어젠다다. 하지만 연방제 수준의 개헌은 혁신적 경제와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열쇠다. 미국과 스위스가 강국인 이유는 부단한 실험주의로 다양성과 혁신을 만들어온 연방제 정신에 있다. 이는 곧 촛불 혁명이 그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영구적 혁신의 미래로 이어지는 길이다.
입만 열면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경제와 평화의 강국이 될 수 있는 길인 개헌을 함께 만들어간다면 보수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달라지지 않을까. 2차 남북 정상 회담도 희망하지만, 개헌을 주도했던 정해구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과 개혁적 보수의 거장인 김병준 국민대 교수의 멋진 악수도 보고 싶다.
30년 만의 촛불 혁명 시대에 걸맞은 보수는 향후 30년을 만들어갈 주체들이 전면에 등장해야 한다. 젊은 세대 및 현장에서 단련된 실력과 품위를 갖춘 전문가 집단 말이다. 앞으로 인스타그램에 등장할 한장의 사진에는 미국의 1970년생 공화당 의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처럼 새 30년 혁명의 주역들이 앞에 앉고 뒤에는 노련한 세대들이 흐뭇하게 배석했으면 좋겠다.
이 모든 상상이 그저 한여름 밤의 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동북아에서 대전환이 일어나고 온난화가 진행 중인 지구로부터 대탈주를 위한 세계 시민들의 구상 등 SF 영화 같은 현실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의 보수 진영이 선거 참패 이후에 너무나 한가하게 당내 계파 싸움만 하는 것 같아 꿈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상대(진보)의 헛발질 한방에 의존하는 답답한 기회주의적인 축구 말고 스스로(보수)의 대담한 상상력이 빛나는 공격 축구를 보고 싶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미국학) 교수
◆ 알림=보수의 재탄생을 모색하기 위한 기획 시론 ‘보수의 길을 묻다’를 시리즈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