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체류 중인 그는 이날 서울중앙지검 기자단에 e메일로 A4 용지 4장 분량의 입장문을 보내 “노 전 대통령 서거 직전 불거진 이른바 ‘피아제 시계’ 보도는 원세훈 전 원장 재임 시절 국가정보원이 기획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원세훈 전 원장이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고급 시계를 받은 사실을 언론에 흘려 달라’고 요청했다”고 폭로했다. 이는 지난해 국정원 개혁위원회 산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팀(TFT)에서도 밝혀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이인규 당시 중수부장 주장
“노, 박연차에게서 시계 받았다 시인
보도 나오자 권여사가 버렸다 말해
원, 언론 흘려 망신 주자 했지만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이 거절”
그는 국정원 직원들의 방문 이후 노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고 설명했다. 2009년 4월 22일 KBS는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피아제 시계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당시 보도 과정에 국정원 대변인실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달 30일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서 올라와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자신이 ‘논두렁 시계’ 보도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전면 부인했지만 이 전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 부부의 고액 시계 수수 혐의 자체는 노 전 대통령 스스로 인정한 ‘팩트’라고 주장했다. 2009년 박연차 전 회장의 진술뿐 아니라 노 전 대통령 역시 검찰 조사에서 “언론에 시계 수수 사실이 보도된 이후 권양숙 여사가 밖에 내다 버렸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전 중수부장에 따르면 박연차 전 회장은 검찰에서 “2006년 9월 노 전 대통령의 회갑을 맞아 피아제 남녀 손목시계 한 세트를 2억원에 구매해 형 노건평씨를 통해 전달했다. 이듬해 봄 청와대 관저에서 노 전 대통령 부부와의 만찬 자리에서 직접 감사 인사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관련 내용이 담긴 조서에 날인까지 했으며 해당 조서는 영구보존 형태로 검찰에 남아 있다”며 “1억원 이상의 고가 시계를 받는 행위는 뇌물수수죄로 기소돼 유죄로 인정될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중대한 범죄”라고 적었다. 9년 전 수사를 둘러싼 이 전 중수부장의 주장에 대해 검찰은 이날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 전 중수부장은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인 지난해 9월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지난 19일 한 진보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가족과 함께 식사 중인 이 전 중수부장의 사진을 공개하자 그를 둘러싼 책임론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