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이런저런 뒷말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6월 14일 자 시사 주간지 타임은 북미정상회담을 커버스토리로 선정하면서 ‘지구 상 가장 리스크가 큰 쇼’라는 제목을 뽑았습니다. 하지만 싱가포르 회담의 성과는 정치적 성과와 내용적 성과로 구분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적 성과로만 따진다면 작년까지만 해도 전쟁 위기설에 휩싸였었으니, 북미 정상이 평화적 의지를 갖추고 만난 것 자체가 눈을 의심케 할 정도입니다. 다만 합의 사항이 2000년 북미 공동코뮤니케 수준과 유사하고 CVID 표현이 없어 아쉬움이 남긴 합니다.
북한 문제의 국제성 부각될수록
북한은 외길에서 뛰쳐나가지 못해
북한의 완전 비핵화와 개혁개방은
안팎에서 도와주고 견인해야 가능
북미 간 70년의 구원을 푸는 데 향후 가시밭길이 없다면 그게 이상하지 않을까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내용적 평가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듯 앞으로도 어디까지 정치적 타결로 풀 것인지, 또 어디까지 내용의 만족을 따질 것인지 잘 정해야 합니다. 이 둘 사이의 균형은 아마도 중국 변수, 폐기 및 반출 핵무기에 대한 북미 간 기대 차이, 완전한 검증 시스템의 복원 등의 상황에서 발목을 잡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미 모두 외길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 북한의 국가성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500개에 달하는 장마당, 500만명을 넘어선 휴대전화 소유자, 유럽 유학을 다녀온 젊은 지도자 등은 북한의 국가성이 바뀌기에 충분한 조건입니다.
둘째, 북한 문제의 국제성이 부각될수록 약속을 파기할 수 없는 구속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벌써 북·중 정상회담이 세 차례나 열리고, 북·러 정상회담이 예고되어 있으며, 은둔의 나라 지도자치고는 너무도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등장했습니다. 북한 문제의 국제적 성격이 강화될수록 북한은 이 외길에서 뛰쳐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셋째, 담판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과거 어떤 정부도 풀지 못했던 북한 문제를 자신만이 해결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과거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의 대북정책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평화 국면 조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판단컨대 북한에 이렇게 우호적인 환경일 때 체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줄탁동기(啐啄同機)라는 말이 있습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안에서는 병아리가, 밖에서는 어미 닭이 쪼고 두드리는 일을 동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고 싶어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해서 개혁개방을 하고 싶어도 혼자 힘으로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어미 닭의 두드림처럼 한국과 국제사회가 도와주고 견인해야 합니다. 외길이 평화의 길을 만나는 과정에서 우리의 생각과 노력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