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대변인의 식당 굴욕…아동 격리한 죄로 쫓겨났다

중앙일보

입력 2018.06.24 15:02

수정 2018.06.2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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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법이민 무관용 정책’으로 인해 백악관 대변인을 비롯한 고위 관리들이 “비윤리적ㆍ비인간적 정부를 위해 일한다”는 비난을 들으며 식당에서 쫓겨나고 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3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어젯밤 버지니아 렉싱턴의 레스토랑 ‘레드 헨’에서 내가 미국 대통령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며 “나는 정중하게 레스토랑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 [중앙포토]

 
샌더스 대변인은 “나는 의견이 다른 이들을 포함한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갖고 대하고자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식당 주인 "지켜야하는 기준 있다"
샌더스도 수긍하고 식당서 빠져나와
국토안보부 장관도 멕시칸 식당서 퇴짜
ABC, 부모 만나지못한 아동 1800여명

샌더스 대변인의 이 같은 봉변은 레스토랑 종업원의 페이스북을 통해 먼저 알려졌다. 종업원은 “오늘 밤 백악관 대변인이 레스토랑에서 쫓겨났다”면서 “주인은 샌더스 대변인과 그 정당(공화당)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레스토랑 주인 스테파니 윌킨슨이 이후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를 통해 밝힌 자세한 사연은 이렇다. 당시 집에 있었던 윌킨슨은 셰프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샌더스 대변인이 식당에 손님으로 왔는데 어떡하면 좋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쫓겨난 버지니아주 레스토랑 '레드 헨'. [AP=연합뉴스]

윌킨슨은 직원들에게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지 말해보라. 샌더스 대변인에게 나가 달라고 할 수도 있다”고 하자, 직원들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예약은 샌더스 대변인의 남편 이름으로 진행된 8석이었다. 윌킨슨이 식당에 도착했을 때 이미 테이블엔 치즈 플레이트가 놓여 있었고, 주방에선 메인 요리를 준비 중이었다.
 
윌킨슨은 샌더스 대변인에게 다가가 자신을 소개하고 잠시 밖에서 이야기하자고 청했다. 이후 윌킨슨은 “직원들 모두가 샌더스 대변인이 불법 이민자의 부모-아동 격리정책을 변호하며 질문을 피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면서 “우리 레스토랑은 정직, 연민, 협력과 같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기준 같은 것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샌더스 대변인 또한 즉각 ‘좋다. 가겠다’고 말한 뒤 소지품을 챙겨 나갔다고 WP에 전했다. 윌킨슨은 “그들은 계산을 하려 했지만 돈을 받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윌킨슨은 WP와 인터뷰에서 “샌더스 대변인은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정부에서 일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잔인한 정책들을 옹호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반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사업을 하고 있고 그게 잘 되길 바란다”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편한 행동이나 결정도 해야 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같은 일이 벌어져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윌킨슨의 ‘무관용’에 대한 찬반논란도 뒤따랐다. ‘용감하다’라는 찬사도 있었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않았다. 당시 레스토랑에 동행했던 샌더스 대변인의 아버지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는 트위터를 통해 “레드 헨 레스토랑 메뉴에 ‘편협함’이 있다”고 비판했다.
 
샌더스 대변인에 앞서 최근 이민 정책의 주무부처인 국토안보부의 커스텐 닐슨 장관도 백악관 근처 멕시코 식당에 들렀다가 고객들로부터 ‘수치’라는 항의를 받고 식당을 빠져나갔다는 소식이 의회전문지 더힐을 통해 알려졌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비난 여론에 밀려 불법 이민자 부모와 아동을 격리하는 정책을 철회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지만, 미 국경에서는 여전히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미 ABC 방송에 따르면 지난달 5일부터 트럼프 행정부의 밀입국자 전원 기소 무관용 지침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미 국경에서 부모와 격리된 아동은 모두 2300여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500여 명은 부모의 품에 다시 안겼지만, 현재 1800여 명의 격리 아동은 아직 부모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ABC 방송은 전했다.
 
세관국경보호국의 경우 국경에서 가까운 지역의 임시 수용시설만 관장하기 때문에 부모와 일시적으로 떨어진 아이들을 금방 부모에게 찾아줄 수 있지만,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가족국으로 넘어간 아동의 경우 보호시설이 상대적으로 국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물리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재결합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에릭 헨쇼 변호사는 “부모들에게 ‘걱정하지 마라. 곧 아들, 딸을 찾게 될 거다’라고 말해주고 있지만, 솔직한 심정은 언제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일러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