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 김경수 당선인은 충무공동에서 70.3%의 득표율을 보여 한국당 김태호 후보(25.1%)를 2.8배 앞질렀다. 진주시 유권자의 경우 김 당선인에게 51.1%, 한국당 김 후보에게 44.5%의 지지를 보낸 것과 비교된다. 전통적으로 한국당이 득세해온 진주시 선거에서 혁신도시가 있는 충무공동이 민주당 표심을 주도하는 진원지가 된 것이다.
충무공동은 진주혁신도시 내 공공기관이 이주를 시작한 2013년 12월 생겼다. 출범 첫 해 486명에 불과했던 인구는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11개 공공기관 이주와 공동주택 단지 건설로 1만7600여 명(5월 기준)으로 늘었다. 20~40대 비율이 절반을 차지한다. 60세 이상은 1100여 명에 불과하다. 진주혁신도시의 한 공공기관 직원 김모(46)씨는 “서울에서 내려온지 2~3년 밖에 되지 않은 젊은층이 많다보니 지역정서에서 자유로운 수도권 표심이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 혁신도시 14개 기초·광역 단체장 선거서 12곳 민주당 지지
보수 텃밭의 민주당 진지
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제7회 지방선거 결과 전국 10개 혁신도시 중 9곳이 민주당 시·도지사 후보를 상당한 격차로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 텃밭으로 불려온 영남권에 있는 5개 혁신도시도 마찬가지였다. 예외는 무소속 원희룡 당선인을 지지한 제주혁신도시 뿐이었다. 한국당이 우세를 점한 곳은 없었다.
혁신도시 지지 후보와 광역단체장 당선인이 다른 지역은 대구·경북 두 곳이다. 대구 신서혁신도시(동구 안심3·4동)에선 민주당 임대윤 후보(46.2%)가 한국당 권영진 당선인(43.9%)을 제쳤다. 김천혁신도시에서도 민주당 오중기 후보(63.7%)가 한국당 이철우 당선인(23.4%)을 압도적인 표차로 눌렀다. 보수색이 강한 대구·경북에서도 혁신도시가 진보의 거점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다.
기초단체장 투표 경향도 비슷했다. 혁신도시는 독립된 자치단체가 아니다. 부산혁신도시의 경우 부산 남구 등 3개구에 걸쳐 있고, 충북은 진천·음성 등 2개 군, 전북은 전주시·완주군 등 2개 자치단체 경계에 조성됐다. 이 때문에 기초단체장을 뽑지 않는 제주도를 제외한 9개 혁신도시의 표심을 반영하는 기초단체장 선거구는 모두 13곳이다. 이 중 12곳이 민주당 후보를 더 지지했다. 민주당 후보가 나오지 않은 경북 김천은 무소속 후보에게 표를 가장 많이 줬다. 광역단체장 선거와 마찬가지로 비한국당 투표 성향이 두드러졌다.
혁신도시 표심과 기초단체장 선거결과가 엇갈린 곳은 대구 신서혁신도시와 경남 진주혁신도시(충무공동)다. 이들 지역의 표심을 분석해 보면 혁신도시의 진보 투표 성향을 알 수 있다.
안심3·4동이 동구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은 타지에서 온 젊은층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5월 주민등록인구를 살펴보면 안심 3·4동은 30대 인구 비율이 19%, 40대 인구 비율이 18%다. 반면 50대는 13%, 60대는 9% 수준이다. 이와 반대로 동구청 인근 원도심인 신암5동의 경우 30대 10%, 40대 14%, 50대 19%, 60대 17%로 50~60대 비중이 높다. 채장수 경북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혁신도시는 세종시처럼 젊은 연령대의 공무원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아 기존 지역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민심을 나타낸다”며 “맹목적인 정당 투표가 아니라 합리적 선택을 하는 유권자가 많다”고 말했다.
이곳은 꾸준히 보수 정당 후보를 지지하다 이번 선거에서 표심이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2014년 치러진 6회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강대식 대구 동구청장 후보는 안심 3·4동에서 71.7%(1만3154표)의 득표율로 통합진보당 권택홍 후보(25.6%)를 이겼다. 2016년 총선에선 당시 새누리당을 탈당한 무소속 유승민 후보를 선택했고, 2017년 대선에서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35.1%)를 가장 많이 지지했다.
이주민 표심에 젊은층 결집 효과도
진주시 구도심에서 충무공동으로 이사를 온 이모(39)씨는 “이주민도 많지만 충무공동에 사는 주민 중엔 구도심에서 온 젊은 사람들이 많다”며 “다른 읍ㆍ면ㆍ동과 달리 선거 기간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고 50대 이상 주민들도 같은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지역 정서에서 자유로운 이주민 효과 뿐 아니라 지역 젊은층이 집결해 진보 성향이 강해지는 결집효과가 나타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김천과 진주 같은 중소도시에선 전체 인구가 크게 늘지 않으면서 혁신도시가 조성돼 지자체 내부에서의 인구이동이 많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진재구 청주대 교수(행정학과)는 “혁신도시 인구 구성은 이주 공공기관 직원과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신혼부부들이 많다”며 “수도권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이주민 표심에 진보 성향의 지역 젊은층이 결합하면서 민주당 지지율이 더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혁신도시 실망vs만족…"어쨌든 문재인 지지"
서울·경기에서 온 외지인과 충북 청주·진천·음성 등에서 이사 온 젊은층이 각각 절반 정도인 충북혁신도시가 대표적이다. 충북혁신도시 이해성(62) 주민자치위원장은 “신도시에 걸맞는 문화·체육 인프라를 기대하고 온 사람들 사이에서 정주여건에 대한 불만이 높다”며 “‘문재인 정부가 혁신도시 완성에 힘을 쏟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 심리가 선거에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강원혁신도시 주민 이모(51·여)씨는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침체됐던 지역 부동산이 활성화 되고 요식업·서비스업·숙박 등 지역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는 주민이 많다”며 “이런 긍정적인 요인이 혁신도시를 추진했던 민주당 정권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과)는 “혁신도시는 지역균형발전을 목적으로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발한 도시인만큼 유권자들이 중앙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후보에게 지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진천·진주·대구·원주=최종권·위성욱·김정석·박진호 기자 choig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