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장 친근한 조선 궁궐 중 하나인 덕수궁 얘기다. 질곡의 조선 역사와 더불어 왕실이 온갖 풍파를 겪으며 덕수궁은 본래 모습을 상당 부분 잃었다. 그러나 이 사실조차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 잇따른 훼손·멸실 겪어
고종 침전 정문 ‘광명문’ 연내 이전
서양식 연회장 돈덕전 등 새로 지어
2038년까지 514억 들여 원형 복원
덕수궁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13년 간 대한제국의 궁궐로 사용한 곳으로, 당시는 중명전과 옛 경기여고가 있던 자리까지 포함된 넓은 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궁역이 여러 이유로 잘려나가고, 궁궐의 전각들은 사라졌다.
문화재청은 우선 일제 때 옮겨진 광명문을 제자리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이다. 2016년 발굴 조사 결과 광명문과 배치형태가 동일한 건물 자리를 확인했다. 광명문 이전은 19일 기공식 행사를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1902년 세워졌으나 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돈덕전도 석조전 뒤편에 재건한다. 돈덕전은 고종 즉위 40주년을 맞아 칭경(稱慶·축하의 의미)예식을 하기 위해 지어진 서양식 연회장이다. 고종을 만나기 위한 대기장소나 국빈급 외국인 방문 시 숙소 등으로 활용된 공간으로, 순종의 즉위식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순종이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긴 후 덕수궁 공원화 사업이 추진되면서 사라졌다. 문화재청은 올해 돈덕전 복원 공사를 시작해 2021년 완공할 계획이며, 복원 후에는 대한제국과 관련한 자료관 등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기 전 가장 먼저 신축했던 선원전도 복원한다. 선원전은 화재와 복원, 그리고 해체 등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가진 곳으로 꼽힌다. 1900년 불에 탔으며, 1901년 옛 경기여고 부지로 옮겨 복원됐다가 1919년 이후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가 해체되는 과정을 겪었다.
‘덕수궁 제자리 찾기’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소 엇갈린다. 김정동 목원대 교수는 “그동안 묻혀 있던 많은 덕수궁 관련 사료가 새로 발굴됐다. 이를 복원하지 않고 덮어두는 것은 역사를 덮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그동안 많이 왜곡되고 궁궐로서 품격도 훼손된 덕수궁을 복원하는 것은 역사를 바로 보기 위한 작업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창모 경기대 교수는 “덕수궁 복원은 대한제국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그동안 조선 궁궐에 대한 관심은 경복궁과 창덕궁에 집중돼 있었고, 덕수궁은 나라를 빼앗긴 비운의 왕 고종의 궁궐 정도로만 여겨져 왔다”며 “그러나 최근 학계에선 고종이 근대 국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보는 시각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평가절하돼온 대한제국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덕수궁 복원은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반면 홍순민 명지대 교수의 의견은 다르다. 홍 교수는 “덕수궁 복원의 의미와 당위성은 물론 복원의 실제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광명문을 제자리로 돌리는 작업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역사를 기억하는 것과 과거의 건물을 복원하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이미 역사에서 사라진 돈덕전과 선원전을 다시 지을 이유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