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취재일기] 지금이 천막 이벤트 할 때인가

중앙일보

입력 2018.06.19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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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18일 섭씨 30도를 넘나드는 서울 도심 콘크리트 바닥에 천막이 쳐졌다. 이른바 ‘현장 노동청’이다. 청계천 광장에 들어섰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개청식에서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제도개편 등 현안을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고 정책을 보완할 기회”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정책을 홍보하고 제안도 받겠다는 뜻이다. 대구 동성로를 비롯해 인파가 붐비는 전국 10곳에 이런 현장 노동청이 들어섰다. 한 시민은 “뙤약볕 아래 천막 청사를 만들면 정책이 제대로 나오고, 고용 사정도 나아질까”라고 했다. 또 다른 시민은 “내 눈엔 시위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개청식 주변은 ‘노동자에게 표 받고 재벌 편을 들고 있나?’ ‘줬다 뺏는 최저임금 삭감법’ ‘김영주 장관 퇴진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푯말과 앞 조끼를 입은 시위 인파로 둘러싸였다. 이날 고용부가 보도자료로 홍보한 첫 ‘제안’은 ‘고발’이었다. 모 회사 노조가 낸 사업주에 대한 근로기준법 위반과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다. 정부 의도와 사뭇 다르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서울 청계광장 현장노동청 개청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현장을 중시하겠다는 뜻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천막 노동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울고용청이 있다. 의견 개진이 더 빠르고 손쉬운 정부 홈페이지도 있다. 청와대의 국민청원제가 이를 활용한 사례다. 한데 굳이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때에 인파가 북적이는 곳에 천막을 치고 정책 홍보와 제안 접수에 나선 이유가 뭘까. 한 시민은 “이벤트로 눈길 한 번 끌어보겠다는 것 아니냐”며 정부로선 달갑잖은 해석을 했다.
 
따지고 보면 근로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과 관련된 문제점은 산업현장 곳곳에 차고 넘친다. 이것만 잘 종합해도 국민의 제안이 무엇인지 금세 알아챌 수 있다. 10여 일 뒤면 근로시간이 단축되는데 이제 와서 “시민 제안을 듣겠다”니 납득이 될 리 만무하다.


그나마 고용 참사에 대해 “충격적”이라는 반성은 기재부에서 나왔다. 일자리 주무부처인 고용부는 뭘 했을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안정자금을 집행했다. 주 52시간 관련 판례를 정리한 자료집을 내면서 “상당수 기업은 준비가 잘 되고 있다”고 했다. 유연근무제와 같은, 산업현장에서 수없이 제안했던 제도에 대해선 지나치게 과묵하다.
 
그동안 나온 현장의 목소리를 분석해서 제대로 된 정책 밥상을 차리는 게 정부가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보이기식 이벤트는 작열하는 태양만큼 산업현장을 열병 들게 할지 모른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