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전부는 아니다. 먼저 근로시간 개념부터 바로 세워야 할 판이다. 점심시간에 샌드위치를 먹으며 회의를 하고, 1박 2일 직장 워크숍도 가며, 퇴근 후 카톡으로 자료 찾아 달라고 하면서도 정작 근로시간을 따져 본 적은 없었다. 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싼 혼란은 지금껏 근로시간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온 탓이 크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화수목금금금’은 직장생활의 미덕이었다. 할증임금 역시 쏠쏠했다. 특근이 ‘특혜’인 현실에서 근로시간 규제는 느슨할 수밖에 없었다. 노사만의 잘못이 아니다. 정부의 방임도 한몫했다.
근로가 아니면 휴식이라는
이분법적 판단구조 한계 있어
‘나를 따르라’ 방식 밀어붙이면
좋은 정책도 껍데기만 남게 돼
둘째, 불법과 편법은 막되, 법에 대한 무지와 오해로 인한 혼란만큼은 신속히 해소해 줘야 한다. 정보기술(IT) 업계의 경우 사무직이야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 프로그램 개발 업무 종사자가 일하는 시간과 장소 선택이 자유롭다면 혹여 법상 재량 근로에 해당할 여지가 없는지 따져 볼 일이다. 조선업에서는 해상 시운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완성된 배를 바다에 띄워 놓고 마지막 점검을 하는 절차다. 근로자가 선실에서 쉬면서 대기하고 있다가 문제가 생기면 투입되는 방식이라면 ‘단속적(斷續的)’ 업무로 보고 합리적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 임원급 직원이나 차량 운전기사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관리·감독 또는 비밀 취급 업무에 해당한다면 애초에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막연한 불안을 방치하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셋째, 이참에 52시간 근로 그다음 단계까지도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 52시간 근로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게 틀림없다. 4차 산업혁명으로 닥칠 노동시장의 변화는 가히 예측 불허다. 언제까지고 근로 시간의 양에만 매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휴식 시간의 보장일지 모른다. 흥미롭게도 독일은 ‘노동 4.0 백서’를 통해 ‘미래의 근로자 상’을 그려 놓고 있다. 바로 ‘호숫가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는 근로자’와 ‘자신이 스스로 세운 스케줄에 따라 일하는 근로자’다. 한국도 이래야 한다면 정부의 고민은 빠를수록 좋다. 지금과 같은 소모적 혼란은 한 번이면 족하다.
정부가 노사 당사자일 수는 없다. 그래도 그들의 눈으로 보고, 듣고, 공감했으면 한다. 조금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꼭 그래야 한다. 노동정책의 성패는 여기에 달려 있다. 근로시간 단축도 예외일 수 없다.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순간 아무리 좋은 정책도 껍데기만 남고 만다. 과거 수많은 정책이 그런 수순을 거쳤음을 또렷이 기억한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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