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빠 멋진 모습 못 본 사람 아무도 없게 해주세요’. K팝 가수의 영상을 본 팬의 댓글이다. 이처럼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모습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 컬러TV가 보급되던 시절의 조용필 ‘오빠부대’도, 인터넷 초창기의 H.O.T. 팬클럽도 그랬다. 이들은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CD를 친구에게 선물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콘서트를 가는 다소 단순한 방식으로 팬심을 공유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한 이후 ‘팬덤’(스타를 쫓는 열성팬)의 공유 방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SNS 세대의 팬은 스타와 관련한 콘텐트를 직접 제작해 서로 나누고 해외 팬과도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SNS의 발달로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팬덤을 세대별로 살펴봤다.
SNS가 본격적으로 ‘팬질 창구’가 되면서 팬덤의 화력은 막강해졌다. 온라인 세계를 기반으로 언어·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글로벌 팬덤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 무대에서 K팝의 위상도 높아졌다. ‘B급 코믹가수’ 싸이가 ‘월드스타’로 거듭난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2년 유튜브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영상 공개 100일 만에 5억 뷰를 돌파했다. 싸이는 ‘2013 빌보드 뮤직 어워드’의 ‘톱 스트리밍 송 비디오’(최다 조회수를 기록한 뮤직비디오) 부문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여기엔 SNS와 함께 태어나고 성장한 ‘SNS 1세대 팬’의 활약이 한몫했다.
콘텐트 소비에 힘쓰는 1세대
좋아하는 스타 관련 콘텐트
사진·그림 넣은 굿즈 제작
국경 뛰어넘어 팬끼리 공유
이후 세계 무대에서 K팝의 활약이 주춤할 무렵 ‘SNS 2세대 팬’이 등장했다. 1세대가 주로 공식 콘텐트를 소비했다면 이들은 직접 ‘팬 제작 콘텐트’를 만들어 자신들의 스타를 응원한다. 팬이 스타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는 ‘팬아트’가 대표적이다. 인스타그램에는 #팬아트, #fanart 같은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72만 건(11일 기준)을 넘어섰다.
팬아트·동영상 생산자로 나선 2세대
팬덤 유대감 강화하는 3세대
3세대 팬의 활동은 이것만이 아니다. 자신이 직접 제작한 굿즈(연예인 그림·사진을 넣어 제작한 상품)를 다른 팬에게 무료로 나눠 주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아이돌 ‘뉴이스트 W’의 팬인 이수연(가명·35)씨는 자신의 취향이 담긴 포토카드·엽서 같은 굿즈를 직접 제작한다. 그는 지난해 8월 무료 나눔 행사를 시작했다. SNS에서 다른 팬이 만든 굿즈를 보고 교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8일엔 멤버의 생일을 기념해 홍대 한 카페에서 자신이 만든 물건으로 ‘굿즈 패키지 나눔 이벤트’를 진행했다. 그는 “간식을 들고 찾아와 응원해주는 팬부터 자신이 만든 굿즈와 교환해가는 팬까지 다양한 사람을 직접 만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팬이 제작한 콘텐트는 양날의 칼이라는 우려도 있다. 콘텐트를 개인이 소장하거나 무료로 나눌 땐 문제없지만 판매 등을 통해 수익이 생기면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지난 1월 워너원의 팬미팅이 열린 말레이시아의 스타디움 네가라 주변에서 비공식 굿즈를 팔던 한국팬이 현지 경찰에 적발돼 구금된 일이 있었다. 관광비자로 입국했는데 영업 행위로 이민법을 위반한 것이다. 해외가 아니더라도 연예인 사진을 이용해 수익을 얻었다면 초상권·저작권 침해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아무리 스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제작한 콘텐트라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당부했다.
글=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사진=중앙포토,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유튜브, 각 인스타그래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