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사람들에게 홍어 무침을 건네며 넉살 좋게 막걸리 한 잔까지 곁들어주는 이는 서른세 살의 전희진 씨다. 전 씨는 망원시장에서 홍어 무침을 판다. 가게 이름하며, 세련된 외관, '가오리 출입금지'·'삭히지 않았어, 해치지 않아'라고 써놓은 문구가 눈길을 끄는 곳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전 씨는 2017년 2월 망원시장에 동생 전은철 씨와 함께 포장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홍어 가게 ‘무침 프로젝트 홍어 무침’을 차렸다.
전 씨는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어머니가 응암동 대림 시장에서 20년 넘게 홍어 식당을 하고 계세요. 대학 때부터 식당일을 자주 도와드렸는데 어머니 몸이 좀 안 좋아지셨죠. 그 맛을 지키고 싶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사실 홍어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이다. 한 번 맛보면 그 매력에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강한 냄새에 코부터 감싸 쥐는 사람도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삭히는 정도에 따라 육질과 맛이 달려지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집에 가면 구리구리한 홍어 냄새가 가득했어요.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에는 민감하게 굴기도 했죠. 스무 살 넘어서 처음 홍어를 맛봤는데 솔직히 맛없었어요. 지금은요? 큼큼하게 삭힌 홍어 맛을 즐기죠. 나이가 드니 입맛도 변하나 봐요”
홍어 맛에서 가능성을 본 전 씨는 2015년 본격적으로 전수 수업을 받았다. 어머니의 식당에서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하며 홀 서빙과 손님 응대, 주방일을 배웠다.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비위가 좋은 편인데 홍어 해체 작업 중에 배 가르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어머니가 전통 방식으로 항아리에 한지와 지푸라기를 넣고 홍어를 삭혔기 때문에 여름이면 그 냄새가 대단했어요. 일을 배우면서 먼저 계절에 따라 다른 맛이 나는 홍어를 표준화·계량화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손님들은 항상 일정한 맛을 기억하잖아요? 그 믿음에 답하는 맛을 찾아야 했어요. 가족들과 연구한 결과 저온숙성이 답이더군요. 지금은 동생이 매일 부산에서 올라오는 홍어를 손질해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본점과 여기 분점으로 가져와요. 본점에서는 삼합 등 전통적인 홍어 요리를, 분점에서는 삭히지 않은 홍어 무침만 판매해요.”
가게는 개업하자마자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주변에서 홍어 무침 하나만 판다고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처음엔 밀려오는 손님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포장만 해가는 집인데 하루에 300여 명이 사 갔으니까요. 주말엔 그 두배를 팔았고요. 지금은 그때의 70% 정도 되는 거 같아요. 하루 나가는 홍어 양이 매장에서 30kg, 택배로 20kg 정도 돼요”
‘무침 프로젝트 홍어 무침’은 더 넓게 펼쳐질 예정이다. “처음부터 맛에 자신감이 있었어요. 한 번 맛보면 홍어의 참맛을 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삭히지 않았기 때문에 남녀노소, 외국인까지 거부감없이 즐길 수 있는 맛이라 확신했어요. 앞으로 포장판매만이 아닌 다른 음식과 어우러져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다른 메뉴들을 개발하고 가능하다면 먹고 갈 수 있는 매장도 고려 중이에요”
전 씨에게 맛이란 무엇인가 물었다. “어릴 적부터 가족들과 밥상에 앉아서 나누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아버지는 항상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맛있는 것을 먹는 행복한 식탁의 의미를 강조하셨죠. 저는 내 가족이 먹는 음식이라 생각하고 팔고 있어요. 절대 먹는 거로 장난치지 않고 다시 찾아도 변함없는,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나는 그런 맛을 추구하고 싶어요”
사진·글·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