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불꽃 튀듯 국익이 충돌하는 안보 협상을 부동산 거래 정도로 가볍게 본 것 같다. 사실 트럼프는 자신의 대선 캠프와 러시아 정부의 미 대선 개입 공모 의혹으로 국내에서 궁지에 몰려 있다. 국내 정치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북·미 정상회담을 활용해야겠다는 초조감 때문에 트럼프는 중요한 부분을 놓쳤다. 그는 5월 24일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전격 선언한 직후 북한이 보인 저자세를 보면서 자신의 전략이 먹힐 것으로 판단하고 정상회담을 재추진했다. 하지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문구를 합의문에 넣지 않겠다고 회담 하루 전까지 버틴 북한을 내치지 못했다.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교환
‘검증’이란 핵심이 빠져 아쉬움
트럼프 탄핵 정국서 ‘성공’ 절실
핵 폐기로 역사적 이정표 세워야
2차 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은 자신이 보유한 압도적 군사력을 과신해 정교한 안보전략이나 협상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당근과 채찍을 절묘하게 조합해 협상하면 될 것을 나중에 군사력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베트남과 이라크에서 불필요한 전쟁을 했다. 트럼프가 북핵 문제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큰일이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미국 내부의 평가는 인색할 것이다. 트럼프의 발목을 잡고 있는 특검 정국을 돌파하기엔 역부족이다. 이 정도 북·미 합의로는 11월 미 의회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이러한 부족함 때문에 트럼프는 후속 회담에 매진할 수밖에 없고, 그가 탈퇴한 이란 핵 합의보다도 못한 북핵 합의라는 악평을 듣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었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만남이 이어지면 트럼프 임기 중에 북한 핵 폐기를 향한 여정이 훨씬 부드러워질 수 있다.
72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주석의 첫 만남은 미·중 적대관계의 종식을 알리는 역사적 회동이었다. 이를 계기로 중국과 소련 관계가 본격적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세계를 변화시킨 한 주’라고 자신의 중국 방문 시점을 극적으로 표현했지만, 역사적 만남이 곧바로 미·중 관계 정상화로 이어지진 못했다. 오히려 닉슨은 74년 탄핵 직전에 사임했고, 76년엔 마오 주석이 사망했다. 그렇지만 72년 닉슨의 방중이 있었기에 마침내 78년 카터 행정부 때 미·중 관계 정상화로 이어졌다.
북·미 정상이 사상 처음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양국 관계는 물론 북·중 관계에 엄청난 ‘사건’이고, 한반도와 동북아에 전략적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 국내 정치적 과오로 인해 임기 중에 물러나는 바람에 전략적 결단의 효과가 뒤늦게 나타난 닉슨과 달리 트럼프가 배전의 노력을 한다면 이른 시점에 역사적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한·미 간에 전략적 공감대를 넓히면서 남북관계를 신중히 다뤄 나가야 한다. 그래야 북핵 폐기와 한·미 동맹 공고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전 외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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