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17일, 암벽등반의 귀재 토미 칼드웰은 키르기스스탄의 흙길 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여자 친구 배스 로든을 쳐다보며 울부짖었다.
2시간1분53초만에 엘 캡 정상에
■ 토미 칼드웰
원정 등반서 이슬람 반군에 인질로 잡혀
조직원 벼랑서 밀고 탈출 뒤 자책감 빠져
손가락까지 잘려 암벽등반 관둬야할 판
접합수술 포기하고 힘과 기술 더 키워
가장 어려운 루트, 시간과의 싸움…
오히려 시련을 자신의 무기로 삼아
대학 진학 포기하고 전업 클라이머의 길로
17살 칼드웰은 각종 클라이밍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프로 클라이머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차에서 자고 청년센터 화장실에서 몸을 닦으며 미국 곳곳을 누볐다. 50달러로 한 달을 버텼다. 전업 클라이머의 세계는 혹독했다. 하지만 칼드웰에게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 카에다에게 잡히다
“이건 낙석이야, 낙석!”
칼드웰의 여자 친구 배스 로든이 소리쳤다.
“아니, 총성이야. 우릴 겨냥하는 거라고!”
칼드웰(당시 20세)은 이미 미국 최고난도 스포츠 루트 중 한 곳인 콜로라도의 크립토나이트(kryptonite·5.14d)를 등반해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베스 로든(당시 20세)은 난도 5.14급을 등반하는 몇 안 되는 여성 클라이머 중 한 명이었다. 제이슨 싱어(당시 22세)는 캐나다 배핀의 소르 마운틴을 14일에 단독 등반하는 등 등반계의 유망주였다. 존 디키(당시 25세)는 사진 촬영차 이들과 함께 했다. 이들은 2주 전에 키르기스스탄에 도착해 한 달간 등반을 할 계획이었다.
총을 쏜 무리는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디키가 먼저 하강해 이들에게 담배를 건네며 몇 마디 나눴다. 이들은 담배를 거절했다. 디키는 모토롤라 무전기를 든 채 떨리는 목소리로 일행에게 연락했다.
“어, 음…모두…내려와야겠는데….”
통행허가 내준 키르기스스탄 정부군도 잡혀
이미 1년 전인 1999년 8월에 일본인 지질학자 4명을 64일간이나 인질로 잡아 놓기도 했다. 이 이슬람 반군은 한 명을 더 붙들어 놓고 있었다. 며칠 전 칼드웰 일행에게 통행 허가를 내준 키르기스스탄 정부군이었다. 정부군은 손짓발짓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미 내 동료 세 명이 처형됐다.”
칼드웰 일행의 얼굴이 굳어졌다.
갑자기 정부군의 러시아제 Mi8 헬리콥터가 산등성이 너머에서 나타났다. 일행은 몸을 숨겼다.
“헬기에 어떤 사인을 보내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거요.”
압둘이 협박했다.
잡혀있던 정부군은 자신이 처형될 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칼드웰에게 손짓을 했다.
“걱정 말아요. 난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소.”
떨고 있는 로든에게도 수신호를 보냈다.
“울지 마세요. 전 울지 않습니다.”
그리고 압둘을 따라 갔다. 바위 뒤에서 두 발의 총성.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정부군과 반군간 교전이 시작됐다. 칼드웰은 처형된 정부군의 시체 뒤에 숨어 총알을 피했다. 그는 총알을 막아주려는 듯, 로든을 감싸 안았다.
알 케이다 조직원을 죽이다
16일 자정께, 압둘은 칼드웰 일행의 야영지에서 건전지를 가져온다며 자리를 떴다. 1명의 감시자만 남았다. 그의 이름은 ‘수’였다. ‘수’는 가파른 경사면을 버거워 하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칼드웰은 기회라 생각했다. 칼드웰은 로든에게 눈짓을 보냈다.
‘내가, 정말 이 사람 죽이기를 원해?“
로든의 반응은 없었다.
칼드웰은 ‘수’의 소총을 잡고 좌우로 흔들며 그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레지(절벽의 튀어나온 바위) 뒤로 밀어 버렸다. 19살짜리 반군은 10m를 떨어진 뒤 500m 아래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난 칼드웰의 행동을 이해한다”
“내가, 내가 어떻게….”
그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토미, 안 그러면 우린 죽었을지도 몰라.”
일행은 칼드웰을 겨우 진정시켰다.
그들은 무작정 걸었다. 뒤에서 바위 구르는 소리가 나면 반군이 쫓아오는 줄 알고 깜짝깜짝 놀랐다. 그들은 29km를 걸어 정부군 부대에 들어섰다. 6일간의 악몽이었다. 모두 10kg 가까이 체중이 빠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 외에도 독일인 6명, 러시아인 3명, 우즈베크인 2명, 우크라이나인 1명 등 12명의 클라이머들이 곳곳에서 IMU의 인질로 잡혀 있었다.
칼드웰은 귀국해서도 ‘수’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레지 너머로 떨어지는 장면은 정지화면이 되어 그의 머리에 박제로 남았다.
얼마 뒤, 칼드웰은 자신이 밀어버린 반군 ‘수’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른 클라이머들이 감옥에 잡혀있는 ‘수’를 만났다고 한다. ‘수’는 “난 그(칼드웰)의 행동을 이해한다”고 했다.
칼드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납치 우두머리 압둘은 칼드웰 일행 귀국 직후에 정부군과 교전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칼드웰의 시련은 계속 됐다.
왼손 집게손가락이 사라졌다
“와줘야겠어.”
로든이 톱 옆에 떨어진 손가락을 찾아 비닐 지퍼 백에 넣고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는 접합한 손가락으로는 힘을 줄 수 없어 더 이상 등반할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손가락을 이식시켜 주겠다고 했다. 칼드웰은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고민했다.
“제 손가락을 포기하겠습니다.”
그리고 병원을 나섰다. 아버지는 다른 손가락의 힘을 늘리는 장비를 만들어줬다. 칼드웰은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거대한 화강암 앞에 섰다.
지구에서 가장 어려운 루트에 오르다
손에서 피가 맺혔다. 칼드웰은 다이노 동작을 하다가 수십 미터를 추락했다. 요르게슨은 15번째 구간에서만 10차례 시도하며 7일간 악전고투 끝에 완등하기도 했다. 칼드웰과 요르게슨은 생중계하듯 SNS에 등반 상황을 전했다. 요세미티에는 이들의 등반을 지켜보는 관중이 몰렸다. 그리고 2015년 1월 14일, 이들은 열아흐레에 걸쳐 다운 월 등반에 성공했다.
‘push’로 살아온 칼드웰
칼드웰이 쓴 자서전의 제목이 ‘푸쉬’다. 아버지는 자신을 산으로 밀어 넣었다. 19살 알케아다 조직원을 절벽으로 밀어버렸다. 자신의 손가락이 톱에 밀려들어갔다. 정신적, 육체적 시련을 겪고도 거듭났다. 클라이머에게 요구되는 절제와 욕망의 경계선에서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그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암벽등반 루트에 자신을 밀어 넣었다.
칼드웰과 호널드가 엘 캡 노즈를 오르며 기록 단축에 매달리는 것이 합당한가라는 비판도 있다. 등반이라는 행위 자체가 자신을 극복하는 행위임을 감안한다면 새로운 시도는 해봐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다음은 어디일까. 칼드웰의 손끝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