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차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지난달 21일 3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 통과를 앞두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도 공방이 불붙었다. 수소차 보급 활성화를 위한 지원 사업비를 놓고서다. 국회의 공방은 ‘우리나라 국회에는 경제논리는 없고 정치논리만 있다’는 우울한 현실을 또다시 확인시켜줬다. 일부 진보 정당 의원은 “특정회사에 대한 특혜”라며 사업비 증액을 반대했다. 수소차는 한국에서 미운 오리새끼가 되고 있다. 수소라는 말 때문에 폭발 위험성이 있다는 괴담까지 횡행한다. 이러고 있는 사이 수소차 투자에 나선 부품회사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현장을 찾아갔다.
세계 최고 수소차 기술력 갖고도
편견과 무지에 발목잡혀 고사 중
300개 부품사 가동률 한 자릿수
직원 뽑아놓고 다시 해고할 상황
차량은 시작일뿐, 드론에도 사용
범용화 대비해 정부 지원 늘려야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수소차의 핵심 부품인 연료탱크를 만드는 일진복합소재 완주군 봉동공장에서 그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김기현(49) 대표이사를 포함해 직원 77명이 일하는 이 회사는 2011년 중견기업 일진그룹이 인수하면서 신성장 동력으로 수소차 투자에 올인했다. 정부가 2015년 수소차 활성화를 본격화하기로 하면서다.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그해 12월 ‘수소차, 2018년부터 3000만원대 구입 가능해진다’는 9쪽짜리 보도자료까지 공동으로 내면서 수소차 산업 활성화에 대비하라고 주문했다.
일진은 수소차 연료탱크 공급을 맡았다. 수소탱크는 내연기관차의 연료탱크와는 달라 50억원을 투자해 전용 생산 라인을 깔고 인력도 10명을 새로 뽑아야 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일진은 올해 수소차 3000대 분량의 연료탱크를 생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장이 풀가동돼야 한다. 하지만 일진의 공장 가동률은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이 수치는 최근 제조업가동률이 9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는 통계를 기억 속에서 불러냈다. 정부의 계획에 따라 완성차 업체가 양산 계획을 짜고 중소기업으로선 거액의 투자를 감행해 생산 라인을 신규로 깔고 사람을 뽑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이 바뀌자 공장이 돌지 않는 탓이다. 수소차 부품업체의 절망은 그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수소차는 현대차가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개발해놓고 정부가 정책적 지원을 거두면서 서서히 숨을 거두고 있는 미래 산업이다. 수소차 개발에 성공한 완성차 기업은 현대ㆍ도요타ㆍ혼다 등 전 세계에서 3개사에 불과하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수소차는 전기차를 뛰어넘는 궁극의 자동차”라며 “에너지 절감과 친환경을 고려할 때 반드시 키워나가야 하는 미래산업”이라고 말했다. 영국ㆍ독일ㆍ프랑스 등 선진국은 10~20년 내 휘발유ㆍ경유를 태우는 내연기관차 생산을 속속 중단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수소차 역시 전기차라는 인식부터 할 필요가 있다. 수소차는 대기에 존재하는 수소와 산소가 만나 전기를 일으키면서 구동된다. 문제는 연료로 쓰이는 수소 확보가 어렵고 충전소 구축 비용이 크다는 점이다. 우선 수소는 석유화학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나오는 ‘부생수소’를 사용한다. 하지만 확보량이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이런 문제는 연구개발(R&D)을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눈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는 ‘수소경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수소혁명』에서 “미래사회는 수소경제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했고, 매켄지가 지난해 발표한 ‘수소사회’는 2050년 수소 관련 산업이 2조4000억 달러 시장과 일자리 3000만개를 창출할 것으로 봤다.
지금은 승용차에 머물러 있는 수소발전이 공장은 물론 가정용 전기 공급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일진에서도 드론용 수소탱크를 주문받아 생산을 완료했다. 전기배터리차와 마찬가지로 드론 역시 배터리는 사용시간이 짧지만 수소탱크를 활용하면 훨씬 빠르게 충전하고 장시간 비행을 할 수 있다.
이런 노력 끝에 환노위 위원들 사이에 “수소차 보급 확대를 위해 보조금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수소차는 어렵사리 112억원의 보조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수소차를 생산하는 완성차 제작업체는 특정회사 밖에 없다”는 반대 의견도 여전했다. 국민의 미래 먹거리 산업조차 ‘재벌 프레임’에 빠진 탓이다. 현대차가 부품을 조립해 팔아주면 중소기업이 같이 크는 분야라는 인식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을 보자. 미국ㆍ일본은 물론 중국도 수소차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내연기관차로는 미국ㆍ독일ㆍ일본ㆍ한국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비야디를 세계 최대 전기차 회사로 키워 낸 중국은 최근 수소차 개발ㆍ보급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수소 올림픽’으로 치르겠다면서 수소 버스 50대를 투입할 예정이다. 도요타는 2014년 미래를 의미하는 ‘미라이’를 출시해 4000대 이상 팔았다. 산업전략 차원에서도 수소차 기술 선점은 미루어 둘 수 없게 됐다.
김 대표와 이런 얘기를 나누며 공장을 돌아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3000대 분량의 생산 체제를 갖췄지만 추경 보조금을 합쳐도 현대차 납품 규모는 700대에 그치기 때문이다. 공장을 나설 때 눈길을 스친 김 대표의 처진 어깨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