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4)
강원도 산골 저 안에 숨겨진 산막에 눈이 내리면, 눈 덮인 산하 흑백사진 동화 같은 세상이 펼쳐진다. 순간 나는 밤늦게 무리해 가며 들어오길 잘했다 싶고 모든 게 고마워진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무엇이든 생각날 때 해야 하나 보다. 멈칫거리고 미루다 보면 못하게 되고 후회하게 된다. 하얀 눈이 탈도 많고 허물도 많은 우리네 삶 흔적들을 순백의 순결로 덮어주는구나.
산막은 언제나 좋다. 세상이 힘겹고 삶이 나를 속일 때도, 기쁜 일 있고 나누고 싶은 일이 있을 때도 나의 산막으로 간다. 눈 덮인 산막은 고즈넉하고 장작 난로가 타고 따뜻한 외로움이 있어 좋다. 달빛에 서러움 있고 별빛엔 그리움 있어 더욱 좋다.
땔감은 물론 실외 인테리어로도 쓰는 장작
사방이 산이요 산마다 나무인데 왜 사서 쓰느냐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산에서 나무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자르기도 운반하기도 보통 일이 아니라 난로용 장작만큼은 사서 쓴다. 그게 훨씬 싸고 경제적이다. 운반차가 정리까진 안 해주니 부려놓은 장작은 집 주위로 예쁘게 쌓는다. 산촌의 정취가 있고 보기에도 좋으니 일종의 실외인테리어(exterior)인 셈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나무를 자른다. 전기톱으로 자르고 도끼질도 하며 장작을 만든다. 한겨울 내내 화톳불이 되어줄 것이며 돼지 바비큐의 깔끔함이 되어줄 것이다. 노동은 신성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몸과 맘이 둘이 아님을 느낀다. 하지만 혼자 하기는 힘들어 때로는 페이스북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이름하여 오늘은 나무데이. 계곡 공사로 베어진 잡목들은 다음 기회에 정리해야겠다. 그 뿌듯함은 말로 못한다. 그 만족을 알기에 그날을 기다린다. 그날도 나무데이, 진짜 나무 데이다. 언젤지 모르지만 장비 준비하고 날 잡을 거다.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산막이고 그래서 스쿨이다.
자유를 만끽하는 산막의 아침
장작개비 하나 타는 데 27분 소요
마른 장작개비 하나가 27분을 탄다면 두 개가 타는 시간은 54분일까? 그렇지 않다. 화력은 두배가 되겠지만 타는 시간은 비슷할 거다. 밤새 화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장작을 넣어야 하는가? 너무 과열되지 않게 밤새 꾸준히 천천히 타는 장작 난로가 되어 잠 설치는 일 없는 밤을 생각한다.
장작 난로 타는 따뜻한 방안에 앉아 바람 불고 추운 세상을 보는 마음은 세상을 떠난 마음으로, 세상일을 하고 세상에 얽매인 마음으로, 세상 밖을 보는 마음 아닐까 한다. 그 마음자리 다를 바 없을 진데 결국 모든 게 마음 아니겠나? 그러니 이 삶 어째야 할까? 성심으로 살 도리밖에…. 장작 패서 곳간에 쌓아놓고 다가오는 겨울의 아늑함을 생각하는 촌부의 모습이고 싶다.
권대욱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사장 totwkwon@ambate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