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당시 사법행정 수뇌부들에 대한 형사 고발이 이어지며 검찰 수사 가능성이 제기되는 데다, 법원 내부 혼란을 넘어 사법부 전체에 대한 국민 불신으로 확대되자 진화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재판 거래' 의혹, 검찰 수사까지 거론되자
퇴임 8개월 만에 기자 회견 자청, 입열어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시행도 부인
"검찰이 수사한다고 합니까?" 되묻기도
양 전 대법원장은 회견 2시간 전 일부 기자들에게 연락해 입장을 발표할 뜻을 밝혔다. 준비된 입장문 없이 즉석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20여분 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재판 개입과 자신에 비판적인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 선 그는 “재판을 흥정거리로 삼아서 방향을 왜곡하고 거래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감정이 북받치는듯 입술을 굳게 다물거나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이른바 판사 뒷조사 문건에 따라 일부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도 부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정책에 반대한 사람이나 재판에서 특정 성향을 나타냈다는 사람이나, 어떤 편향된 조치를 하거나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상고법원 입법을 놓고 청와대와 교감을 했다거나 대통령 독대 당시에 관련 문건 등을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 “그런 것(대통령 독대 말씀자료)은 일회성으로 넘어가는 것이지 무슨 공부 하듯이 (내용을) 외우고 있겠느냐”고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자신의 지시로 블랙리스트가 작성, 보고됐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부인하는 취지의 답을 내놨다. “제가 있을 때 법원행정처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이 지적됐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잘못된 것”이라고 했지만 ‘불법’ ‘위법’ 등 표현 대신 ‘부적절한 행위’라고 선을 그었다.
재판 거래 의혹 중 하나로 지목된 KTX 해고 승무원 사건과 관련해 “법관이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결론을 낸 것이다. 그걸 견강부회해서 판결이 잘못됐다고 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 수사 가능성에 대한 질문엔 “검찰이 수사를 한다고 합니까?”라고 되묻고 “그때 가서 이야기하자”고 즉답을 피했다.
사상 초유의 사법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초읽기에 접어드는 분위기다. 이날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새로운 (위법) 사실이 추가되면 얼마든지 형사 조치를 취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