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최고 국빈대우 받으며 뉴욕 입성…오늘밤 세기의 담판 완결

중앙일보

입력 2018.05.3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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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뉴욕입성 첫날이 순조롭게 지나가면서 북·미 간 ‘세기의 담판’ 합의 가능성에 파란불이 켜지고 있다.
 
우선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 협의를 양측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 부위원장의 30일(현지시간) 만찬이 화기애애한 가운데 진행됐다.
비핵화와 체제보장 등 핵심 의제와 일정을 결정하는 31일의 ‘뉴욕 담판’을 앞두고 치러진 전초전ㆍ탐색전의 성격이었지만 9부능선을 넘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90분간 화기애애한 만찬 끝난 뒤
폼페이오, 기자회견 일정 앞당겨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졌다는 신호

이날 오후 7시부터 뉴욕 맨해튼 38번가의 주유엔 미국 차석대사의 관저에서 시작된 만찬은 한 시간 반 가량 뒤에 끝났다. 만찬을 마친 폼페이오 장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2장의 사진을 올리면서 분위기를 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30일(현지시간) 김영철 부위원장과 만찬 이후 트위터에 사진 두장을 올렸다. 화이애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이크 폼페이오 트위터]

 
폼페이오 장관과 김 부위원장이 미소를 머금은 채 악수하는 사진과, 배석자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역시 웃는 표정으로 잔을 맞대고 건배하는 사진이다. 같은 테이블에는 지난 10일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때 배석했던 앤드루 김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 임무센터(KMC)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김 부위원장과의 회동을 위해 뉴욕으로 떠나기에 앞서 트위터에 “우리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CVID)에 전념하고 있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는데, 회담 이후에는 “김영철(부위원장)과 오늘 밤 뉴욕에서 훌륭한 실무 만찬을 가졌다”면서 “스테이크와 옥수수, 치즈가 메뉴로 나왔다”고 낙관적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전했다.
 
만찬장을 나온 김 부위원장은 차를 타고 곧바로 10분 거리의 숙소로 들어갔다. 폼페이오 장관도 약 5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만찬장 밖으로 나와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만찬장을 나오면서 원하는 바를 얻은 듯 환한 웃음을 지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오전 미디어브리핑 때만 해도 “우리 초점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이에 대한 검증할 수 있는 확인(verifiable confirmation)”이라며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회담은 31일 하루종일 진행될 것”이라고 말해 쉽지 않은 협상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를 반영하듯 폼페이오 장관의 기자회견 역시 다음날 오후 늦게 혹은 저녁시간으로 예정돼 있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맨 오른쪽)이 30일(현지시간) 뉴욕에 도착해 숙소로 들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폼페이오 장관의 다음날 일정은 만찬 이후 바뀌었다. 
기자회견 시간이 저녁 무렵에서 오후 2시15분(한국시간 6월1일 오전 3시15분)으로 앞당겨졌다. 큰틀에서 모종의 합의가 만찬 자리에서 이뤄졌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김 부위원장과 회담 결과에 관해 설명하는 기자회견은 폼페이오 장관의 숙소인 뉴욕 롯데팰리스 호텔에서 열린다.  
 
김 부위원장에 대한 미 국무부의 의전과 경호만 보더라도 ‘거래’를 성사시키려는 폼페이오 장관의 의지가 짙게 묻어났다.  
 
이날 오후 2시쯤 중국 국제항공 CA981편으로 뉴욕 존 F. 케네디(JFK) 국제공항에 도착한 김 부위원장은 일반승객용 도착 게이트나 VIP 게이트가 아니라 항공기 계류장에서 바로 캐딜락 승용차에 올라타 뉴욕 시내 숙소로 향했다. 이는 최고 국빈에 대해서만 허가되는 의전이다. 경호 차량 6∼7대가 앞뒤로 둘러싼 채 나가는 모습은 공항 곳곳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던 국내외 기자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유엔의 외교소식통은 “계류장에서 직접 에스코트하는 것은 통상 국가원수급에 제공되는 것”이라며 “미 국무부가 김 부위원장의 의전에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날 공항에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소속 외교관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자성남 북한대표부 대사 역시 의전을 위해 입국장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대표부 관계자는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에 “워싱턴과 평양 사이에 이뤄지는 사안이라 우리는 아는 바 없다”, “대표단이 도착해야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할 것 같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러면서도 “성과를 거두려고 하니까 여기 뉴욕까지 온 것 아니겠느냐”면서 긍정적인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영철의 숙소는 유엔본부와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사이에 있는 밀레니엄 힐튼 유엔플라자 호텔. 지난해 유엔 총회때 이용호 외무상이 묶었던 호텔로, 북한 고위 당국자들이 자주 이용해왔다. 지난해 9월 이 외무상은 이 호텔 앞에서 “태평양 상공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는데, 1년도 안돼 분위기가 180도 바뀐 셈이다.
 
공항에서 한시간 반 정도 걸려 호텔에 도착한 김영철은 최강일 외무성 국장대행,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등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김 부위원장 일행은 호텔 앞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은 채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경찰은 김 부위원장 일행이 호텔로 들어가는 동안 호텔로 연결되는 43가 거리를 모두 통제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김영철은 호텔에 잠시 머물며 양국 간에 진행된 판문점ㆍ싱가포르에서의 접촉 결과물을 보고받고 챙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뉴욕은 유엔 본부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주유엔 북한대표부 사무실의 보안설비를 이용해 평양은 물론 싱가포르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제 역사적인 세기의 담판을 남겨두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의 ‘뉴욕 담판’이 지난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소 발표로 한때 위기에 빠졌던 ‘6ㆍ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구해낼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영철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간에 빅딜이 성사될 경우 김영철은 워싱턴으로 이동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