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 취업 준비생인 고종우(28)씨는 이달 초 한 인터넷 취업 카페에 스터디를 모집하는 글을 올렸다가 깜짝 놀랐다. 글을 올린 지 2시간 만에 조회 수가 100개를 돌파하더니, 너도나도 ‘꼭 함께하고 싶다’며 지원서를 보냈기 때문이다. 지난달 모집을 시작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체험형 인턴’이 되기 위한 스터디였다. 고씨는 “정원이 5명에 불과한 스터디에 30명이 넘는 지원자가 연락을 해왔다”며 “작년에 인턴 면접에서 떨어진 적이 있어서 올해는 아예 체계적으로 스터디를 구성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근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심지어 비정규직 인턴이나 대학 고시반원이 되기 위한 스터디를 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그동안 취업 준비과정으로 여겨지던 인턴이나 고시반원 선발 과정조차 ‘하늘의 별따기’가 되면서 지원자가 몰린 탓이다. 최근에는 정규직 취업을 준비하면서도 몇 년이고 재도전하는 ‘인턴 재수생’ ‘고시반 재수생’까지 등장했다.
“비정규직이라도…” 인턴 스터디까지
자격증 준비하는 고시반 재수생도 흔한 말
일부 고시반 경쟁률, 시험 경쟁률보다 높아
지난 14일 취업사이트 사람인(www.saramin.co.kr)이 구직자 431명을 대상으로 ‘구직자가 바라는 인턴’이라는 주제로 조사한 결과 54.8%가 ‘주요한 업무를 하지 않는 인턴이라도 지원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실무 경험을 쌓고 싶어서’(55.5%)▶‘직무를 체험, 탐색해보고 싶어서’(41.9%)▶‘취업에 꼭 필요한 스펙인 것 같아서’(36%) 등이 나왔다. 그러나 정작 인턴십 종료 후 정규직 전환에 합격한 응답자는 29.3%였다. 채용전제형임에도 정규직 전환 합격 비율은 38.7%에 불과했다.
각종 국가 자격증이나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대학 내 ‘고시반’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입반을 위해 스터디를 하는 것은 물론 아예 1년 동안 재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많다. 25일 고려대 CPA(공인회계사)반에서 만난 대학생 박모(29)씨는 “입실 시험이 실제 고시 1차 시험 난이도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어려운 편이라 6개월 미만 공부해서는 들어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대학생 A씨(27)는 “지난해 입실시험을 봤다 떨어진 후 6개월간 인터넷강의를 통해 공부한 뒤에야 고시반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의 입실시험은 실제 정식 시험의 경쟁률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지난해 5급 행정고시의 경우 9760명이 응시해 최종 275명이 선발돼 경쟁률 35.4:1 수준을 기록했다. 같은 해 CPA 시험은 최종 경쟁률 9.9:1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중앙대 행정고시반과 CPA반의 입실시험 경쟁률은 각각 41.1:1과 5.7:1 수준이었다. 고려대의 행정고시반은 지난해 입실시험 경쟁률이 9.1:1, CPA반은 4:1 수준이었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인턴·고시반 들어가기가 정규직보다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극심한 취업난이 낳은 ‘과잉경쟁’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분석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용안정성이 높고 고임금이 보장되는 ‘1차 노동시장’에 청년들 몰리기 때문에 경쟁이 점점 더 과열되는 것”이라며 “스터디를 많이 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극심한 경쟁사회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라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난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학생들은 실용주의적인 방법으로 목표에 다가서고 있다”며 “인턴이나 고시반 모두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관문으로 현실적인 눈높이를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