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오면서 캠핑 등 야외활동도 늘어난다. 산과 들에서 뱀과 마주칠 기회도 많아진다. 국내에서는 연간 400여 명이 뱀에 물려 응급치료를 받는다. 전 세계적으로는 연간 수백만 명이 뱀에 물리고, 그중 10만 명 정도가 사망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뱀을 싫어하지만 뱀은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구리·쥐를 잡아먹고, 독수리·너구리·멧돼지의 먹이가 되는 뱀은 먹이사슬의 중간에 위치하고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생태계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사람의 미움을 받지만 지구 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것이다.
인류 역사와 같이한 뱀
"혁거세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62년 만에 하늘로 올라가더니, 그 후 7일 만에 유체(遺體)가 흩어져 땅에 떨어지고, 왕후도 따라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이 합장(合葬)하고자 하니, 큰 뱀이 쫓아와 방해하므로 머리와 사지 등 오체(五體)를 각각 장사 지냈다."
사람들은 그 장사 지낸 곳을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고 한다. 경주 탑동에 있다.
"옛날 한 부자가 광주 북촌에 살았다. 그 딸이 부친에게 이르기를 매일 밤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로 들어온다고 했다. 딸은 부친이 시킨 대로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의 옷에 찔러두었다. 날이 밝아 실을 찾아보니 바늘이 북쪽 담 아래의 큰 지렁이 허리에 찔려 있었다. 그 후 임신이 되어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15세에 자칭 견훤이라고 했다."
결국 견훤은 지렁이 혹은 뱀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다는 얘기다.
우리 조상은 뱀을 사악한 동물로 여겼지만 때로는 신비한 초능력을 지닌 대상으로 섬기기도 했다. 조상들은 재신(財神) 역할을 하는 구렁이가 집 밖으로 나가면 집안이 망한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실제로 구렁이는 곡식을 축내는 쥐를 1년에 100마리씩 먹어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민가에서는 옛날부터 장독대 앞에 '터줏대감'이라는 택지신(宅地神)과 '업'이라는 재신(財神)을 모셔놓았다. '터줏대감'이란 장독대 항아리 속에 곡식을 넣어 보관하는 것을 말하고, '업'은 집 안에 숨어 사는 구렁이를 가리킨다.
제주도에서는 ‘고팡(고방·庫房)’ 안 여러 독(항아리) 가운데 하나에 안칠성(안七星)이란 사신(蛇神)을 모셔놓기도 했다. 조상 제사나 굿, 명절 때 메밥을 지어 사신에게 바치곤 했다. 제주 사람들은 안칠성이 쌀독의 곡물을 지켜 부를 이루게 해준다고 믿었다.
뱀 다리는 언제 사라졌을까
뱀의 조상들은 지금의 도마뱀과 비슷했고, 다리도 당연히 있었다. 국립생물자원관 이정현 박사는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거나 좁은 틈새를 지나다니는 데 적응하면서 다리가 퇴화했다”고 말했다.
중생대 백악기(1억3500만 년 전~6600만 년 전) 혹은 쥐라기(1억8000만 년 전~1억3500만 년 전)에 다리가 부분적으로 퇴화한 뱀 조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브라질에서는 1억2000만 년 전에 돌아다녔던 네 다리를 가진 뱀 화석이 발견됐다. 하지만 이 화석을 두고 일부에서는 뱀이 아니라 도마뱀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와 중동 예루살렘 인근에서 발견된 9200만 년 전 혹은 9800만 년 전 뱀 화석에서는 거의 퇴화해 볼품이 없어진 뒷다리를 볼 수 있다. 다리가 없는 뱀 화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8500만 년 전 것으로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고원에서 발견됐다.
이처럼 뱀 다리가 퇴화한 것은 'ZRS 조절' 유전자 부위에 돌연변이가 생긴 탓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2016년 미국 국립로렌스버클리연구소 팀이 쥐의 DNA를 뱀 DNA로 교체한 결과, 쥐의 몸통은 제대로 발달했지만, 다리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다. 뱀 종류 중에서도 비단뱀이나 보아뱀 같은 경우는 제대로 발달하지는 않지만, 뒷다리 흔적이 있다. 반면 더 진화된 뱀 종류는 유전자에 ZRS 부위도 없고, 뒷다리 흔적도 아예 없다.
먹이 추적 위해 혀 날름거려
가늘고 길게 생긴 뱀은 자기 몸에 비해 큰 먹잇감도 그대로 삼킨다. 큰 먹이를 삼킬 때는 위턱과 아래턱을 탈골을 시킨다. 또 아래턱도 두 개로 벌어진다.
국립생물자원관 이정현 박사는 “뱀은 아래턱이 두 개의 뼈로 이뤄져 있고, 두 뼈가 탄력성 있는 인대로 연결돼 있어 큰 먹이를 삼킬 때는아래턱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턱뼈가 상하좌우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 자기 몸보다 굵은 먹이를 삼킬 수 있다.
뱀은 가늘고 길기 때문에 체내 장기도 특이하다. 포유류 등 다른 동물에서는 좌우대칭인 장기도 몸의 모양에 따라 앞뒤로 배치돼 있다. 폐의 경우 포유류는 두 개가 좌우대칭이지만, 뱀은 비대칭이다. 하나는 크지만 다른 하나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다.
살모사나 비단뱀 등은 적외선을 감지하는 기관을 갖고 있어서 쥐 같은 온혈동물 먹잇감이 몸에서 내는 열을 감지한다. 뱀은 또 냄새를 맡으며 먹잇감을 추적하기도 한다. 뱀이 혀를 계속해서 날름거리는 것도 공기나 토양 입자를 잡아들이기 위한 행동이다. 혀는 입천장에 있는 야콥슨기관(Jacobson’s Organ)으로 입자를 보내 화학물질을 분석, 근처에 먹잇감이 있는지 확인한다.
뱀은 땅을 기어 다니기 때문에 땅의 진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먹잇감이나 적이 접근하는 것을 진동으로 파악할 수 있다.
국내에 사는 뱀은 모두 16종
뱀이 없던 섬에 뱀이 침입하면 재앙이 된다. 뱀은 항공기 랜딩기어 박스에 몰래 올라타고 침입하는 경우도 있다. 침입한 뱀은 나무 위로 올라가 새 둥지를 위협하기도 하는데, 새들은 뱀에 대비가 돼 있지 않아 큰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뱀 가운데는 나뭇가지에서 다른 나뭇가지로 뛰어내리며 최고 200m까지 활공하는 종류도 있다.
육상에서 발견되는 뱀으로는 무자치·누룩뱀·구렁이·유혈목이·대륙유혈목이·비바리뱀·능구렁이·실뱀·쇠살모사·살모사·까치살모사 등 11종이 있다. 제주도에서만 관찰되는 비바리뱀은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줄꼬리뱀과 북살모사 등 2종은 북한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모사는 수컷 없이도 새끼 낳아
살모사(殺母蛇)는 '어미를 잡아먹는 뱀'이란 뜻이지만 이는 살모사가 어미 몸속에서 알이 부화해 새끼로 태어나는 난태생(卵胎生)이기 때문에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출산으로 지친 어미 곁에서 새끼들이 꿈틀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오해한 것이라는 얘기다.
국내 서식하는 뱀 중에서 살모사 종류와 무자치는 난태생이다.
구렁이는 길이가 110~200㎝이다. 능구렁이는 구렁이보다 짧은 60~110㎝이고, 붉은색 몸에 검은색 가로줄 무늬가 규칙적으로 나 있다.
뱀을 보호하려는 노력도
과거에는 뱀을 직업적으로 잡는 ‘땅꾼’도 있었고, 야산 주변에 뱀을 잡기 위해 길게 그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른바 ‘뱀 그물’이다. 기생충이 많기 때문에 뱀을 먹다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사실 국내 뱀을 포획하는 것은 불법이다. ‘현행 야생 생물 보호 및 관리법’과 시행규칙에서는 함부로 포획하거나 채취하거나 죽여서는 안 되는 생물 종을 정해 놓았다. 남한에 서식하는 뱀 중에서 대륙유혈목이·능구렁이·실뱀·누룩뱀·무자치·유혈목이·살모사·까치살모사·쇠살모사·먹대가리바다뱀·바다뱀 등 11종이 보호 대상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치악산국립공원 사무소는 2009년부터 구렁이 복원을 시작, 지속해서 구렁이를 방사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도 24마리를 방사했다.
공단 측은 뱀을 방사할 때 뱀의 배 속에 위치추적 장치를 삽입하기도 하고, 마이크로칩과 유도코일을 넣은 유도관을 삽입해 방사한 개체인지 식별할 수 있도록 한다.
과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방사한 뱀을 잡아 가마솥에 숨겨뒀던 건강원 주인이 연구팀에게 적발된 적도 있다. 발신기 추적에서 뱀이 며칠 동안 전혀 이동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자 주변을 샅샅이 뒤졌고, 결국 뱀을 찾아내 구출했다.
뱀에 물렸을 때는 즉시 병원 찾아야
야외에서 캠핑할 경우에는 텐트로 뱀이 들어오지 못 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취침 전 텐트 입구를 잘 막아야 한다. 또 텐트 주위에 백반 가루를 뿌려두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백반 가루가 없을 때는담뱃가루를 뿌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뱀에 물리면 일단 119에 신고를 하고, 그 사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누워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다. 독이 몸 전체로 퍼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물린 부위를 심장보다 낮게 해 수건 등으로 고정하는 것이 좋다.
상처를 절개하고 입으로 독을 빨아내는 행동이나 얼음으로 상처 부위에 직접 찜질하는 행동, 소주·된장·담뱃가루 등을 상처에 바르는 등 잘못 알려진 민간요법은 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