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급 출신 국·실장 많아지게 고시 독점 깨겠다”

중앙일보

입력 2018.05.25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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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석 인사혁신처장은 ’우수 인력들이 7·9급 공채를 통해 공직 사회로 들어오고 있다. 내년 도입 계획인 ‘속진임용제’가 시행되면 고시 출신의 실·국장 독점 현상이 크게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공무원 전성시대다. 요즘처럼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이 또 있었던가. “공무원이 최고다”라는 말이 공무원에게 던지는 의례적 덕담이 아니라 정확한 현실 진단으로 여겨진 지도 제법 됐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에도 공직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공무원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고, 대접도 충분히 받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새 정부 출범 뒤 이른바 ‘적폐 청산’ 과정에서 여러 부처의 공직자들이 처벌, 징계, 인사 불이익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김판석(62) 인사혁신처장을 만났다. 지난해 7월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인사 총괄 부처 사령탑에 앉은 그는 학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출신이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인사수석실 비서관으로 일한 ‘범친노계’ 인사에 속한다. 그가 밝힌 현 정부 인사 정책의 핵심은 “사람 중심, 인간 존중의 균형 인사”다. 그는 “우수한 인력들이 9급이나 7급 공채를 통해서 공직 사회로 들어오고 있다. 5급 행정고시 출신들이 주로 각 부처의 실·국장이 되는 현실이 바뀔 수밖에 없으며, ‘속진임용제’라는 제도를 통해 그러한 변화를 앞당기려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문답이다.

김판석 인사혁신처장 인터뷰
우수 인력 ‘속진임용제’ 내년 도입
9급 → 5급 승진 10년 이상 빨라져

7급 1차를 적격성·영어·한국사로
사기업 채용과 호환성 높일 계획

9월 시행 ‘재해보상법’ 제정 성과
고위직·과장급 여성 비율 늘릴 것

청년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우수 인력이 공직사회에 유입되는 순기능이 있지만, ‘공시 폐인’ 양산 등의 부작용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7급 공채 1차 시험을 공직적격성평가(PSAT), 영어 표준화 점수, 한국사 시험으로 통일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적성검사와 영어 점수는 공직이 아닌 다른 곳에 취업할 때도 필요한 부분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가 다른 곳 취업에도 도움이 되도록 ‘호환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한국사 문제는 검토위원회를 만들어 암기력 테스트 같은 시험이 되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9급, 7급 공채 응시자 중 대졸자의 비율이 점점 늘고 있다. 예전보다 우수한 자원들이 확보되는 셈인데, 이들을 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속진임용제’라는 제도를 내년 상반기에 도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 직무 역량이 우수한 실무직 공무원들이 빨리 승진할 수 있도록 공무원 임용령을 개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9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는 데 평균 25년이 걸린다. 20대 후반인 공시생이 시험에 합격해 5급까지 오르면 50대가 된다는 얘기다. 그들 중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30대 후반이나 40대에 중요 직책을 맡을 수 있도록 인사 제도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직위공모나 공개경쟁 승진 등을 도입하면 9급, 7급으로 들어와서 국장, 실장 자리에까지 오르는 이가 많이 나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고시(5급) 출신이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공직사회에 경쟁 바람이 거세질 것이다.”
 
이른바 ‘적폐 청산’ 과정에서 많은 공무원이 사법처리되거나 징계를 받았다. 해당 공무원들은 ‘위에서 시키는 일 열심히 한 죄밖에 없다’고 억울해 한다. 이런 일 때문에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분위기가 확산하는 것은 아닌가.
“지난 3월에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해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윗사람이 부당한 지시를 하고, 아랫사람이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일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줄어들 것이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업무 방식은 이미 많이 줄었다. 소신 있게 의사표시를 하는 공무원이 많아졌다.”
 
청와대와 여당이 청년 취업난 대책 중 하나로 공무원 늘리기를 택했다. 국민의 세금 부담이 느는 공무원 증원으로 취업률을 높이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일자리 창출은 기본적으로 민간영역에서 이뤄지는 것이 옳다. 정부는 지원 정책을 개발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여당은 체감 청년 실업률이 20% 이상이라 ‘재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 같다. 정부 일자리 늘리기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나온 고육책으로 봐야 한다. 공무원 증원이 일반직을 늘리는 것은 아니다. 국민안전·생활질서와 관련된 경찰·소방·복지 분야에 집중돼 있다. 대다수 국민이 이해할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가 복잡해졌고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그래서 일반적 업무 능력이 뛰어난 공무원보다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많은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부패 방지와 기회 균등 제공을 위해 오랫동안 인사 원칙으로 삼았던 ‘보직 순환’ 때문에 전문가를 키우지 못한 게 사실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직원들이 자주 바뀌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어려움이 있다고 내게 호소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해 5월에 ‘전문직 공무원 제도’를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하나의 분야를 계속 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국제통상, 환경보건, 남북회담, 재난관리, 인재채용, 금융업감독 등 6개 분야에 95명을 전문직 공무원으로 선정했다. 이를 2022년까지 40개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다.”
 
‘미투 운동’이 벌어지며 여성 공무원 승진 차별의 문제도 제기됐다. 여성 고위 공무원 비율이 적은 게 사실이기도 하다.
“2022년까지 고위공무원단(고공단)은 현재의 6.5%에서 10%로, 과장급은 14%에서 20%로 점진적으로 여성 비율을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연령대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여성 공무원이 많아 목표 달성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
 
취임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큰 성과라고 자평하는 부분은.
“공무원 재해보상법 제정이다. 그동안 순찰활동 중 사망한 경찰관이나 벌집을 제거하다 벌에 쏘여 숨진 소방관 등 공직을 수행하다 목숨을 잃은 경우에도 국가가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다. 문제가 많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지만, 제도 정비가 미뤄져 왔다. 이 법이 9월부터 시행된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이다.”
 
김판석은 …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부산 동아고, 중앙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아메리칸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99년에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가 됐다. 세계행정학회(IIAS) 회장, 국제공공관리연구학회(IRSPM)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인사제도비서관으로 일했고, 연세대 정경대학장을 지냈다.


 
이상언 기자 lee.sang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