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3시 홍대 걷고 싶은 거리 바닥에 검은 옷을 입고 검은 깃발을 든 젊은 여성 1000여 명이 앉았다. ‘나의 몸, 나의 인생, 나의 선택’이라고 쓰인 검은 피켓을 손에 들었다. 비웨이브(BWAVE·임신중단 합법화를 위한 모임)가 주최한 이번 집회에는 경찰 측 추산 1000명, 집회 측 추산 1000명의 인원이 모였다. 4일 뒤, 헌법재판소에서는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린다.
“내 몸은 내 것·약물 낙태 허용하라”
24일 헌재 낙태죄 심판 공개변론
이날 참가자들은 임신중단을 위한 경구 복용약인 '미프진' 도입도 요구했다. 이들은 "미프진은 세계 119개 국가에서 판매되고 있다"며 "전신마취를 동반하고 자궁내막증과 자궁천공 등의 부작용을 유발하는 외과적 수술 대신 비교적 안전한 방법인 미프진을 도입해 산모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회에 참가한 사회복지사 전모(25·여)씨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며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힘들다고 느꼈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청주에서부터 집회 참석을 위해 ‘모든 여성은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중단할 권리가 있다’고 쓴 큰 피켓을 들고 온 윤모(20)씨는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에 답변도 받았지만, 그 이후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며 “합법화와 함께 임신 중단을 위한 약물을 약국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회를 지켜보던 스웨덴 관광객 마리아 카키도(27·여)는 “70년대도 아닌데 설마 아직도 임신중절이 불법인가”라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마리아는 “출산뿐 아니라 육아와 가사도 전담하는 여성이 몸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남성들도 이런 움직임에 함께 힘을 실어야 한다”며 “지금은 2018년”이라고 강조했다. 스웨덴은 현재 임신 18주까지 임신중단을 허용한다.
한편 참가자들은 집회 장면을 찍는 행인들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사진을 찍는 행인들에게 “몰카(몰래카메라) 찍지 말라”는 목소리가 수차례 나왔다. 주최 측과 현장에 배치된 경찰은 사진을 찍는 행인들에게 다가가 제재했다. 과거 여성단체가 주최했던 집회에서 참가자들의 얼굴과 신상이 온라인상에 노출돼 곤욕을 치른 경험 때문이다.
형법 269조 1항에 따라, 한국에서 여성의 낙태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태아는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며 낙태죄를 합헌 결정했다. 24일 헌법재판소에서는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심판의 공개변론이 열린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