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회장은 ‘승부근성’이 강한 경영자로 유명했다. 그가 회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LG는 보수ㆍ안정적인 이미지였지만, 구 회장은 취임 직후 줄곧 ‘1등’, ‘초우량 기업’, ‘승부근성’ 등을 강조하며 LG의 변화를 주도했다. 특히 그는 매년초 LG인화원에서 그룹 CEO 수십명이 참여하는 1박 2일 글로벌 전략회의를 주재하며 ‘변화’와 ‘혁신’을 강조해왔다. 창업 70주년을 맞은 지난해 초에도 구 회장은 “100년 이상 영속하려면 기업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지속적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0억 적자에도 “길게 봐라”…디스플레이ㆍ2차전지 개척
2차 전지 역시 구 회장의 투자로 현재 LG의 핵심사업으로 성장했다. 1992년 부회장으로 그룹 사업 전반을 챙기던 구 회장은 영국 출장에서 처음 2차전지를 접하고 무릎을 쳤다. 한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니라, 충전후 반복 사용할 수 있는 2차전지를 LG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은 것이다. 구 회장의 지시로 럭키금속이 2차전지를 연구했고, 회장 취임이후인 1996년엔 럭키금속의 연구팀이 LG화학으로 옮겨 연구를 계속했다.
가시적인 성과가 좀체 나타나지 않고, 2005년에는 2차전지 사업이 2000억 가량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구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길게 보고 투자와 연구개발에 더 집중하라”,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과가 나올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며 다독였다. 현재 LG화학은 2차전지 분야에서 세계 1위로, 현대기아차ㆍGMㆍ포드ㆍ르노ㆍ아우디ㆍ상하이차 등 완성차 업체 30곳 이상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구 회장은 1996년 LG텔레콤을 설립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한 뒤 유선통신(데이콤ㆍ파워콤) 인수를 통해 통신을 LG의 주력 사업으로 키웠다. 2010년 통신3사를 합병한 LG유플러스 출범 이후, 구 회장은 과감한 투자로 4세대 이동통신 LTE 시장의 판을 뒤흔들었다. 구 회장은 “단기 경영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네트워크 구축 초기 단계에서부터 과감히 투자하라”고 말했다. 3년으로 예상된 LTE 전국망 구축을 9개월만에 끝냈다.
하지만, 반도체 사업은 구 회장의 통한(痛恨)으로 꼽힌다. 구 회장은 1979년부터 LG가 투자해온 반도체 사업을 DJ정부의 대기업 간 사업 교환 방침, 일명 ‘빅딜’에 따라 현대그룹의 현대전자에 보내야 했다. 당시 구 회장은 두 반도체기업 통합 후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지만 눈물을 머금고 지분을 현대전자에 넘겨야 했다. 그러나 2년 뒤 현대전자는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에 들어갔고, 이름을 하이닉스로 바꾼 뒤인 2011년 SK텔레콤에 인수됐다. LG는 지난 2007년 발간된 『LG 60년사』에서 “인위적인 반도체 빅딜의 강제는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통합법인 출범 이후의 모습에서 나타났듯이 한계사업 정리, 핵심역량 집중이라는 당초의 취지와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주사 전환ㆍLG웨이…핵심사업 성장 발판
구 회장은 또 잇따른 계열분리로 LG그룹의 핵심 사업에 주력했다. 1999년 LIG 분리를 시작으로, 2003년 전선ㆍ제련ㆍ도시가스 사업을 LS로, 2005년엔 정유ㆍ유통ㆍ홈쇼핑 사업을 GS그룹으로 분리했다. 구 회장은 지배구조 개편으로 그룹의 경영 패러다임을 바꾼 이후 2005년에는 경영이념 ‘LG웨이’를 발표해 ‘1등 LG’를 위한 기업문화를 선포했다.
인재와 R&D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구 회장은 미래 자동차산업을 위한 각종 부품과 솔루션 개발 사업, 친환경 에너지 생산ㆍ저장ㆍ관리 솔루션 사업에 씨를 뿌려놓기도 했다. 지난달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문을 연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 ‘LG사이언스 파크’에는 R&D와 혁신을 통한 1등 LG를 향한 구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