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일정 때마다 다른 두 배우를 향해 응원하는 듯한 미소를 짓더라고 묻자 그는 “종서씨는 신인배우고 스티븐은 낯선 환경에서 일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라며 “배려도 있지만 영화를 잘 끌어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제 사심‧욕심은 비우게 됐다”고 했다. “저야 어차피 너덜너덜하잖아요.” 그가 농담 반 웃었다.
“배우에게 이런 인물이다, 설명하지 않았다”는 게 이창동 감독의 말. 그는 캐릭터의 내적 동기를 정해놓는 순간 영화가 보여주려는 미스터리가 깨질 것 같아, 배우들이 각자 정해서 연기하도록 열어뒀다고 귀띔했다. 촬영 전 리허설이 혹독하기로 유명한 감독으로선 이례적인 방식이다.
때문일까. 유아인의 연기 스타일도 감정을 내지르던 전작들과 확연히 달라졌다. 스스론 “때를 벗었다”고 했다. 종수는 실종된 어릴 적 친구 해미(전종서 분)를 찾기 위해 의심스런 남자 벤(스티븐 연 분) 주위를 맴돌지만, 종국엔 종수 자신조차 미궁으로 남는다. “영화의 모호함처럼 인물도 해석의 여지를 두기 위해 최소한으로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종수로서 존재하는 것. 그게 제일 힘들었다”며 유아인은 말을 이었다.
“잘하는 연기가 뭘까요. 항상 의문입니다. 효과적인 감정 전달을 위해 외적으로 과잉된 표현을 요구하는 촬영 현장이 많아요. 짜여진 숏 안에서 누가누가 더 큰 파장을 만들어내느냐의 서바이벌을 하는 느낌도 있죠. 표현의 진정성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 그런 죄의식조차 잊게 돼요. 바깥으로 뚫고 나가는 기교‧표현력에 저만의 색깔이란 걸 더하면서 근육을 키우듯 뭔가를 괴물처럼 만들어왔던 것 같아요. 사실 자연스러움조차 테크닉적으로 연기할 수 있거든요. ‘버닝’에선 그것조차 내려놨어요. 15년 연기 인생에 새로운 시작점을 만들어줬죠.”
그러면서 유아인은 1300만 관객을 모은 ‘베테랑’(2015)의 희대의 악역 조태오를 돌이켰다. “조태오를 연기하고 느낀 딜레마가 너무 많은 남자들이 재벌3세인 조태오처럼 맘대로 살아보고 싶어 했다는 거였어요. 조태오는 진짜 나쁜 놈이고 권선징악적인 결말이었는데도요. 아이러니했죠. 우리가 좋은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그렇게 살진 않아요. 세상을 어떻게 느끼고 선택할지에 영향을 주는 게 훨씬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버닝’은 ‘청불’이지만 관객을 끌기 위해 교묘하게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아내는 어떤 요란한 작품보다 인간애와 통찰을 갖춘 책임감 있는 영화죠. 솔직한 세상을 보여주니까요.”
‘버닝’은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연기상 후보에도 자동으로 올랐다. 수상결과는 현지시간 19일 저녁 폐막식에서 발표된다.
칸(프랑스)=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