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교사는 “교과서와 과목은 ‘통합’돼 있지만, 수업은 ‘과목 쪼개기’로 이뤄진다”며 “이런 수업방식이 ‘학생들의 융합사고력을 키우자’는 통합과목 도입 취지에는 맞지 않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교사가 자신의 전공이 아닌 내용을 가르치다 잘못된 개념을 알려줬을 때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그는 이어 “학교 현장은 준비가 제대로 안 됐는데, 통합과목을 성급하게 도입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실제로 통합과목은 학생들의 융합사고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까. 중앙일보는 통합과목 도입의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교원단체인 한국교총과 함께 지난 14~16일 고교 교사 10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교사들은 통합과목의 융합교육 효과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통합과목이 학생들의 융합사고력을 향상시킨다’고 답한 교사는 40명(39.1%)이었다. 60%가 넘는 교사들이 ‘그렇지 않다’(37명, 35.2%) ‘모르겠다’(27명, 25.7%)고 답했다. 통합과목 도입이 문·이과 장벽을 없애는 데 기여할 것이라 기대하는 교사는 24명(22.9%)으로 더 적게 나타났다.
익명을 요청한 경기도 한 일반고의 사회교사는 “교육부에서는 교사 한명이 전 과목을 가르치라고 안내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는 학교가 얼마나 되겠냐”며 “같은 사회교사라도 전공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분야를 융합해 가르칠 수 있는 교사는 찾기 어렵다. 보통 전공이 아닌 내용은 일반 성인 수준의 지식밖에 전달해 줄 수 없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통합과목이 교사 역량에 따라 수업 격차가 크다는 의견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하는 시각이 많았다. 설문에 답한 교사 10명 중 9명이 “통합과목은 교사 역량에 따라 수업 질이 천차만별”이라고 답했다. 서울 덕성여고 이봉수 사회교사는 “이전보다 교사의 자율성을 훨씬 강화됐기 때문에 교사의 역량에 따라 수업 완성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능력 있는 교사는 탁월한 수업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교사는 평이한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응답자의 절반 정도(48명·45.7%)는 통합과목이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키운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낮춰 스스로 적성과 진로를 개발하게 돕자는 2015 개정교육과정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신동원 휘문고 교장(과학교사)은 “통합과학은 교과서만 놓고 보면 중학교 때 내용이 70% 정도 돼 쉬워 보인다. 하지만 토론·발표·탐구활동·프로젝트 등 학생이 수업에서 해야 할 역할이 늘었기 때문에 학습부담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하경환 서울 양정고 지리교사는 “통합과목의 도입 취지에 맞게 토론식으로 수업해도 중간·기말고사를 보기 때문에 학생들은 암기식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와 같은 입시·시험 위주 교육제도에선 ‘창의·융합 과목’이 신설된다고 해도 학생들의 미래역량을 기르는데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남화 한국교원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교육제도는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통합과목이 학교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게 돕는 것도 중요하다”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과 간 경계가 없는 융합프로젝트를 통해 학생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체험 위주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