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야당의 냉탕·온탕 가운데 오늘은 야당 대표가 그 옛날 1970년대 베트남 사례를 끌어다 부추기는 방기의 불안감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를 검토해 보자. 먼저 미국이 남베트남을 사실상 포기하던 시절로 잠시 되돌아가 보자.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 속으로 깊이 빠져들던 1965년 비범한 분석력을 자랑하던 국방장관 맥나마라는 대통령에게 이렇게 최종 보고한다. “우리에게 세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째, 베트남을 포함한 인도차이나를 포기하는 안. 둘째, 제한적 공중전만을 진행하는 안. 셋째, 공산 북베트남을 제압하기 위해 60만 명의 지상군을 투입하는 안이 있습니다. 하지만 60만 명을 넘어서는 지상군이 투입된다면 베트남에서 중국 군대와 다시 한번 대충돌하게 될 위험은 감수하셔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는 국제주의
진보는 민족주의 흐름 대표해 와
요즘 한국당은 비핵화 외교를
‘닥치고 반대’하다 길을 잃었다
이때의 경험에 빗대어 북·미 접근 속에서 우리가 버려질 수 있다는 낡은 보수의 외마디 비명을 오늘의 맥락에서 하나씩 짚어보자. (동맹에서 방기와 연루의 위험이 근본적으로 제거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현 국면에서 한국당이 조장하는 방기의 불안감을 (1)우리 위상에 대한 비현실적 소국 의식 (2)현재 진행형인 북·미 접근에 대한 몰이해 등으로 나누어 검토해 보자.
한편 자본시장을 돌아보면 대략 1조70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우리 주식시장엔 시가 총액의 30%가 넘는 외국인 투자자금이 들어와 있다. 이 돈은 70년대 남베트남의 패망 무렵 바다로 쏟아져 나가던 보트 피플처럼 쉽사리 한꺼번에 우리 땅을 빠져 나갈 수는 없다.
G2 시대에 미국이 발을 빼기에는 우리의 가치가 너무도 크다. 문제는 그간 우리 산업화와 국가 발전을 주도해 왔다고 되뇌어온 보수 정당이 북·미 접근의 무드 속에서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으면 어떡하느냐는 70년대식 소국주의의 잠꼬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둘째, 북·미 접근 속에서 우리가 버려질 수 있다는 한국당의 과도한 부채질은 요즘의 한반도 그레이트 게임의 기본 구조에 대한 무지에서 온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기에 미국 외교가 잭슨 시대의 고립주의로 돌아가리라는 심각한 우려가 전 세계적으로 제기되기는 했다. 실제로 TPP 탈퇴, 이란 핵합의로부터 발 빼기 등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트럼트 대통령은 정작 한반도에선 적극적이고 파격적인 관여의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아직 예단하기에는 이르지만 6월 12일의 북·미 회담이 비핵화 합의(물론 당분간 북·미 간 협상 줄다리기의 소음은 계속될 것이고, 비핵화의 범위와 절차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불확실하지만)를 넘어서는 담대한 접근으로까지 나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이러한 북·미 접근은 결국 한·중 수교 이래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중국 영향력의 남진(南進)정책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응수로 이해될 수 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보수는 국제주의, 진보는 남북한 민족주의 흐름을 대표해 왔다. 하지만 요즘 문재인 대통령의 비핵화 평화외교를 따라다니며 반대하다 보니 한국당은 스스로 길을 잃었다. 낡은 보수 정당은 이제 무엇을 대표할 수 있는가?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