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5월 22일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봄 등반시즌의 절정기였다. 김홍빈은 5500m 지점의 텐트 안에서 의식이 흐릿했다.
운명의 산, 데날리
김홍빈은 이미 해외 원정 등반에서 기량을 인정받았다. 1991년에 데날리 원정대에 포함됐다. 그런데 비자발급이 예정보다 2주 늦어졌다. 이미 원정대는 츨국한 뒤였다. 김홍빈은 단독등반을 결심했다. 크램폰과 스틱, 소량의 카라비너·단팥죽·비스킷. 그게 그의 짐 전부였다. 쌀은 없었다. 단팥죽과 비스킷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식량 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김홍빈은 데날리 마지막 구간에서 버티지 못하고 두 번이나 돌아섰다. 그리고 탈진과 고소로 쓰러졌다. 운명의 신은 그의 손끝에 와 있었다.
■ 김홍빈
6194m 북미 최고봉 데날리 단독등반
고소병에 걸려 쓰러진 뒤 극적 구조
손가락 모두 잃고도 끊임없는 도전
5월 13일엔 안나푸르나 정상 올라
8000m급 두 곳 더 오르면 14좌 완성
데날리 구조대
구조대는 김홍빈을 5200m에 있는 캠프까지 내려야 했다. 근처에 두 팀의 미국 원정대가 있었다. 구조대와 미국 원정대가 뭉치면 구조는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김이 산소에 반응했다.”
희소식이 날아왔다. 하지만 김홍빈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일어날 수 없었다.
"상태가 심각하다 빨리 구조하라"
“김의 상태가 심각하다. 빠른 구조가 절실하다.”
다른 원정대 의료진이 무전을 날렸다.
구름이 끼었다. 하지가 한 달 앞이고 북극과 가까워, 데날리에는 해가 9시까지는 떠있었다. 해가 지면 엎친데 덮친 격이 될 것이었다. 구조대는 4700m까지 진출했다. 해가 지면서 돌풍이 몰아쳤다. 희망의 빛이 순간 사그라졌다.
공군팀은이 4800m 지점까지 진출했을 때, 다른 한국 산악인을 만났다. 그는 심각한 뇌수종 상태로,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공군팀은 전력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통신 끊긴 구조대
구조대와 공군팀의 교신이 끊겼다. 두 번, 세 번, 네 번…. 응답이 없었다. 로빈슨은 초조했다. 꽤 오랜 시간 위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다 바람 사이로 공군팀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구조대와 150m 정도의 거리로, 오른쪽 길로 새고 있었다. 그들은 절벽으로 떨어지거나 크레바스에 빠질 게 분명했다. 통신은 여전히 불통이었다. 구조대는 부리나케 그들을 따라잡으려 50도의 슬로프를 거침없이 등반했다.
공군팀은 다행히 슬로프를 올라서는 구조대를 발견했다. 그들은 이미 들것(썰매형)에 고정된 김홍빈을 데리고 하산하고 있었다. 김홍빈은 침낭 속에 있었다.
나무토막처럼 굳은 두 손
“김의 두 팔은 밖으로 노출된 상태였다. 그런 급경사 슬로프에서 들것의 줄을 푼 뒤 김홍빈의 몸을 바로 잡기는 어려웠다. 김의 몸이 슬로프의 각도를 못 이기고 추락할 수 있었다. 그리고…27살이었던 그가 28살이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김홍빈이 들것에 단단히 묶이면서 혈액순환이 안 돼 왼팔이 얼었고, 오른손으로 왼팔을 감싸려다가 장갑이 벗겨져 오른손까지 치명상을 입었다는 증언도 있다.
다져놓은 땅에 도착하자마자 김홍빈의 상태를 살피고 온몸을 침낭에 넣었다. 구조대는 망설였다. 여기서 비박하며 날씨가 좋아질 것을 기다릴지, 아니면 4200m의 캠프까지 그대로 내려갈지.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구조대는 150m 이동할 때마다 김홍빈의 상태를 살펴봤다. 잘 버티고 있었다.
새벽 4시경, 날이 개일 조짐을 보였다. 잘하면 김홍빈을 4200m 캠프에서 헬기에 실어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구조대 본부와 연락이 닿았다. 헬기는 5시까지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김홍빈의 폐에는 물이 가득했다. 양손도 심각했다. 당시 구조대는 “홍빈의 손은 나무처럼 딱딱했다”고 했다.
구조대 헬기는 조종사 비행시간 제한에 걸려 오지 못했다. 대안은 군용 헬기를 부르는 것이었다. 공군팀도, 구조대도 앵커리지의 공군기지에 전화를 걸었다. 오전 7시, 헬기가 날아왔다.
“여러 통의 다급한 전화가 응급상황임을 절실하게 보여줬을 것”이라고 로빈슨이 말했다.
몸의 2㎏이 사라졌다
김홍빈은 골프장에 취직했고 포크레인을 몰았다. 하지만 손가락이 없다는 이유로 포크레인 면허 응시 자격조차 받지 못했다.
7년 뒤 결국 데날리 등정…아직 안 끝났다
김홍빈(53)은 2009년에 남극 빈슨매시프(4897m)를 오르며 7대륙 최고봉에 모두 올랐다. 2018년 5월 13일(현지시간)에는 자신의 열두 번째 8000m급 등반에 성공했다. 안나푸르나(8091m)였다. 그가 열 손가락을 잃은 뒤 열 번째 오른 14좌였다. 그는 데날리 사고 전에 에베레스트(8848m)와 낭가파르바트(8124m)에 올랐다. 이제 브로드피크(8047m)와 가셔브룸(8080m)만 남았다. 일각에서는 김홍빈이 올해 14좌 완등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내년을 보겠다”고 밝혔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