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와 통곡이 엇갈린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1886~1973년, 48~53년 재임)은 “이스라엘에선 아무리 현실주의자라도 기적을 믿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건국에 대해 한 말이다. 2000년 전에 로마에 나라를 잃고 대부분 고향에서 쫓겨난 유대민족이 다시 돌아와 그 땅에 나라를 세웠던 이스라엘이 지난 14일로 70세 생일을 맞았다. 건국 자체로는 물론, 아랍세계에 둘러싸인 채 생존을 유지하고 중동에선 드문 서구식 민주주의를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적이나 다름없다. 건국기념일은 이스라엘의 국경일인데 유대 고유의 헤브루 달력(여덟째 달인 이야르의 제5일)으로 쇠고 있어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우스 달력으론 매년 날짜가 다르다. 올해의 이야르 5일은 그레고리우스력으론 지난 4월 19일이었다.
건국 자체가 기적인 나라, 이스라엘
민주주의 정치, 번영 경제 선진국
방울토마토·USB 발명 기술부국
이집트·요르단과 평화협정·국교
팔레스타인 박해 국제 비난 자초
유대국가 이스라엘 건국 과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불굴의 행진’이었다. 19세기 유럽 등에서 시오니즘 운동이 싹트면서 유대 국가를 세우자는 희망·꿈·이상이 무르익어갔다. 로스차일드 가문 등 영향력 있는 유대인 금융인·기업인들은 강대국을 상대로 로비를 펼쳤다.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포어가 당시 오스만튀르크 제국 영토였던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세운다는 ‘밸포어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영국이 1차대전 중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고 전후 위임통치를 하는 동안 유대인 이주가 진행됐다. 이주 유대인들은 영국과 아랍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했다. 이스라엘인들은 2000년의 디아스포라(이산)를 마감하고 48년 조상의 땅에 나라를 세웠다. 나라를 세운 이들은 고대에 조상들이 쓰던 헤브루어를 부활해 국어로 사용하고, 달력도 서구의 그레고리우스력 대신 헤브루 달력을 쓴다. 이스라엘 건국은 고대에 사라진 민족과 국가의 부활이나 마찬가지다.
스타트업 천국 … 세계 20위 부자나라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은 국제통화기금(IMF) 명목금액 기준 2018년 전망치로 3737억 달러로 세계 33위다. 1인당 GDP는 4만2115달러로 세계 20위의 부자나라다.
GDP가 현재의 경제 수준을 말해준다면 5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창업기업)은 미래의 희망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며 이미 세계적인 창업국가 반열에 올라섰다. 매년 문을 여는 스타트업이 1500개에 이른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사이버보안·바이오·드론·과학영농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독자 기술을 확보했다.
건국하는 날부터 생존을 위협받은 나라
이스라엘은 56년 영국·프랑스 주도의 수에즈동란(제2차 중동전쟁)을 거쳐 67년 6일전쟁(제3차 중동전쟁)에서 아랍 국가들과 대적했다. 국방장관 모세 다얀 장군이 이끈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공군·기갑 작전을 바탕으로 압승을 거뒀다. 6일간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등 팔레스타인 몫의 땅은 물론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시리아의 골란고원까지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군사작전 능력과 국토방위 의지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73년 아랍의 보복 기습공격인 욤 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이 벌어지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6일전쟁의 성과에 취해 아랍권을 얕잡아봤던 이스라엘은 기습을 당했다. 밀리던 이스라엘군은 아리엘 샤론 장군이 기갑부대를 이끌고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집트 수도 카이로 방면으로 역습에 나서면서 간신히 휴전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전쟁사는 전 세계에 국방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소중한 교훈으로 활용된다.
‘힘으로는 평화도 독립도 지킬 수 없다’ 교훈
94년 9월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2국가공존’을 골자로 한 오슬로합의를 이뤘다. 72년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 잠입해 이스라엘 선수들을 학살한 ‘철천지원수’와 평화를 위해 대화하고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됐고 이는 2013년 정부로 전환했다. 이스라엘은 94년 이웃 아랍국가 요르단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이츠하크 라빈(1922~95년, 재임 92~95년)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1929~2004, 재임 1969~2004) PLO 의장은 오슬로 합의로, 시몬 페레스(1923~2016년, 총리 재임 2007~2014년) 당시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요르단 국교정상화로 각각 9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스라엘의 지난 70년 역사는 국민을 수호하고 나라를 지키려면 힘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힘만으론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소중한 교훈을 준다.
이스라엘의 그늘, 팔레스타인 박해
하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는 여전히 불편한 관계다. 이스라엘의 그늘이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라말라를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정부가 국제적으로 승인을 더 많이 받고 비회원국 옵서버 자격으로 유엔에서 활동하는 것을 사사건건 방해한다. 가자지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무장세력 하마스는 이스라엘과의 대화를 거부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지난해 12월 6일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포하게 했다. 성전산이 포함된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관할지역이었지 이스라엘의 영토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의회는 67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고 선언했다.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를 임시 행정수도로 삼고 있는 팔레스타인 정부도 공식 수도는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는 물론 이슬람에도 성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이 같은 선언에 중동 세계가 거세게 항의했지만 미국은 그레고리우스 달력으로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을 맞는 14일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기어이 옮겼다. 이는 앞으로 중동에서 새로운 문명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미국은 과거 유엔이 정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경계선인 그린 라인 위에 요새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대사관을 지었다고 일본 NHK방송이 전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