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편견, 취업도 더 어려워" …이중고 겪는 탈북청년들

중앙일보

입력 2018.05.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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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이후 '통일되면 평양 구경 시켜달라'는 사람들도 생겼는데 그때까지 제가 취업은 할 수 있을까요."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한 탈북민 김옥실(가명ㆍ30)씨는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6년 전 탈북해 서울에 정착한 한세인(가명ㆍ24)씨는 아르바이트 조차 쉽지 않다. 한씨는 "알바 면접에서 말투 지적을 받은 뒤 '북한에서 왔다'고 밝히자 '북한 사람은 안 받는다'는 답을 들었다"며 "피자집에서 일할 때 '피클'대신 '오이염'이라고 말했다가 북한말을 쓰냐고 혼나고 해고당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지난 달 2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인근에 한반도기가 걸리고 있다. [뉴스1]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사회에 대한 관심은 늘었지만 탈북 청년들은 편견과 취업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은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겪는다. 이로 인해 취업을 피해 대학원이나 시민·사회단체로 진출하는 이들도 있다. 기업에 비해 북한 관련 시민단체가 적응이 쉽기 때문이다.   
 
탈북민 출신 대학원생 이모(28)씨는 "서로가 '취업이 안 돼 대학원 왔다'고 말하진 않지만 공부에 뜻이 없어도 도피처로 대학원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북한인권단체 NAUH(나우)에서 일하는 김필주(32)씨는 "북한 관련 단체를 비롯한 사회단체에는 비슷한 배경 출신인 사람들이 많고 일반 기업보다 성과를 중시하지 않다 보니 비교적 적응이 쉽다"고 했다. 김씨는 "탈북청년들은 면접 때 '고향이 북한이네요?'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한다"며 "탈북했다는 사실 자체가 심적인 부담이 된다"고 덧붙였다.


"더 나은 남한생활 위해 '취·창업지원' 필요해"

10일 서울 강남구 세텍(SETEC)에서 열린 '2018 중견기업 일자리 드림 페스티벌'에서 구직자들이 면접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많은 탈북민들은 남한생활 적응을 위해서는 취·창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남북하나재단이 만 15세 이상 탈북민 27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7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에 따르면 '더 나은 남한생활을 위해 필요한 지원'으로 24.6%가 '취·창업지원'을 꼽아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2017년 탈북민의 고용률은 56.9%로 일반 국민(61.1%)보다 낮았다. 2017년 탈북민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1.2%로 전년(57.9%)보다 높아졌지만 역시 일반 국민(63.3%)보다는 낮은 수치를 보였다. 실업률도 탈북민은 7.0%로 일반국민(3.6%)보다 약 두 배 높았다. 
 
전문가들은 일반 국민들의 편견해소와 탈북민들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1993년 탈북한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은 "교육시스템이 달라 탈북청년들의 취업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며 "탈북민 취업 쿼터제같은 제도적 장치보다는 남북간 점진적인 교류로 양 국민들의 실력 격차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죽을 고비를 넘겨 남한에 온 탈북자들에게 취업은 더 큰 산"이라며 "현재 취업지원프로그램은 영어교육에 치중돼 있지만,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인성ㆍ역사교육 등 실질적이고 다양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탈북민으로 취업 대신 서울 영등포구에서 '라멘집'을 창업한 이성진(28)씨는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전문 분야가 필요하다"며 "기술을 익히든지 공부를 하든지 탈북민에게는 탈북 이후에 더 큰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