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발언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그 말에는 ▶미국이 적대적 정책을 끝내고 ▶한국과 일본이 북한의 안보를 보장하며 ▶대북 제재 및 체제 비난을 중단한 이후에 비핵화를 실천하겠다는 속내가 담겨있다. 심지어 북한이 판문점 선언문에서 새롭게 명시한 ‘핵무기 선제사용 포기’나 ‘(핵물질) 이전 금지’는 논리적으로 북한이 핵·미사일을 계속 보유한다는 전제가 깔렸다. 한마디로 진정한 비핵화를 하겠다는지 알 길이 없다.
북한 위협이 실질적 축소 안 되는
평화 선언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한·미동맹 약화 실마리 제공하면
아시아 평화 위협 세력 몰려올 것
우리는 외교 정책이 제대로 수행되길 바란다. 그러나 비핵화에 대한 타협은 잘 돼도 점진적이다. 그 점진적 과정에서 한·미동맹을 반대하는 세력에 동맹관계를 약화할 구실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아직 북한의 위협은 줄지 않았고 중국과 협상해야 할 장기적인 문제도 그대로다. 때문에 ‘평화 체제’에 도취하는 순간 그릇된 길로 빠지는 위험을 겪을 수 있다.
또 다른 뉴스는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의 평화 협상에서 주한미군 감축을 옵션으로 다룬다는 뉴욕타임스 기사다. 백악관은 이를 부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에 언론 인터뷰에서 미군 감축을 고려 중이라고 인정했다. 사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의 한국과 일본 주둔 문제를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한·미 양국에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대한 국민과 의회 지지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주한 미군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을 둘러싼 비용 분담 협상에 어려움이 있고, 문재인 정부 내부에는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전시 작전통제권을 조기 전환하려는 노력도 있다. 이런 움직임들 때문에 미군 주둔을 지지하는 장기적 방위공약을 청와대와 백악관이 얼마나 확신하는지에 대한 논점이 흐려진다. 물론 당사자들은 아니라고 항변하겠지만 말이다.
평화 체제에 도취한 사이에 한·미동맹 반대자들은 더 강하게 안보관계를 흔들 것이다. 중국은 평화 협정을 구실로 사드 배치와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축소를 요구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미군기지가 한국 방위용”이라고 비판하는 세력이 평화 체제를 이유로 미군의 일본 주둔을 반대할 것이다. 미국에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대신 중국을 집중적으로 견제해야 한다는 일부 전문가들이 평화 체제 와중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한국에선 북한의 실제 핵 위협에 대응할 핵 억지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 문정인 교수가 지적하는 주한미군 주둔의 법적·지정학적 근거가 반드시 옳지는 않다. 그러나 문 교수는 미군 감축을 바라는 이들에게 평화 체제가 얼마나 매혹적인 기제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이 구체적인 CVID 단계를 밟을 의지가 있는지 시험해야 한다. 북한의 위협이 실질적으로 축소되지 않으면 평화 선언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노벨 평화상을 꿈꾸는 한·미 지도자가 한·미동맹을 약화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순간,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담당하는 실질적인 한 축을 무너뜨리기 위한 세력들이 몰려올 것이다.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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