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의 현장 돋보기
헌법상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허울
직선 10년간 보수·진보 진영 싸움만
법정 선거비 경기 41억, 서울 35억
광역단체장과 동일, 패가망신 속출
“탈정치·선거혁명” 중도 후보 주목
'태풍의 눈이냐' '찻잔 속 미풍이냐'
조 예비후보는 본격적으로 선거캠프를 가동했는데 보수는 여전히 우왕좌왕이다. 세종문화회관(4월 30일)과 한국프레스센터(5월 4일)에서 열린 보수 후보 토론회. “전교조에 휘둘린 이념 교육 바로잡겠다”(곽일천 전 서울디지텍고 교장), “좌파 교육 청산하고 새 교육 펼치겠다”(박선영 동국대 교수), “더 이상 전교조 교장은 없다”(최명복 전 서울시의회 교육의원), “자유·경쟁·책임의 우파 교육 회복하겠다”(두영택 광주여대 교수). 4명의 예비후보가 모두 진보 진영에 날을 세우며 단일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11일로 예정된 단일화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단일 후보 추대 시민단체가 난립하면서 의견 충돌이 여전해서다.
이준순 전 서울교총 회장이 보수 단일화에 불참하고 독자 노선을 걷는 것도 변수다. 마포의 선거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단일화 단체를 신뢰할 수 없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논공행상으로 서울교육이 엉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구도라면 서울은 2010년, 2014년 선거의 재판이 될 게 뻔하다. 2010년에는 보수 대 진보 후보가 6 대 1, 2014년에는 3 대 1이었다. 똘똘 뭉친 진보가 30%대의 낮은 득표율로도 서울 교육을 장악했다. 서울시교육감은 9조원의 예산과 5만4600명의 직원, 121만8000명의 학생과 8만 명의 교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 막중한 자리가 보수 난립으로 인한 '어부지리' 전리품이 된 것이다.
전국적으로도 비슷한 양상이다. 진보 측은 전교조를 중심으로 단일화가 순항인데 보수 측은 대부분 사분오열이다. 4년 전에도 그랬다. 진보는 13곳, 보수는 3곳에서 단일화를 했다. 결과는 보수의 참패. 대구·대전·울산·경북에서만 당선자가 나왔다. 이화여대 성태제 교수는 “4년마다 교육감 선거가 정치·이념의 난장(亂場)이 되고 있다”며 “정치적 중립과 거리가 먼 직선제는 애초 설계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헌법 31조에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2007년부터 직선으로 바뀐 교육감 선거는 헌법을 무시한다. 선거 자체가 고도의 정치 행위인데 정치적 중립이 지켜질 리 만무하다. 지난 2월 27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조 교육감 출판기념회 장면이 상징적이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진보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대선 출정식처럼 많은 사람이 모여 기분이 좋다”(정 국회의장), "조 교육감과 나는 바늘과 실 같은 사이다"(박 시장). 두 인사의 축사는 ‘교육감 선거는 정치 선거’라고 선언한 것처럼 들렸다.
교육감 선거가 진영 충돌로 변질된 가운데 ‘양 날개'를 표방한 중도의 등장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S타워 22층. ‘탈(脫) 정치’와 ‘교육 중심 혁명’ 연대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념 교육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서울교육감에 출마한 조영달 서울대 교수, 전직 교육감(보수 나근형, 진보 이청연)의 부패사슬을 끊겠다며 인천교육감에 도전한 박융수 전 부교육감이다.
- 중도를 내건 이유는
- 교육을 이념의 늪에 빠뜨리는 건 죄악이다. 4차 산업혁명이 밀려오는데 교육감이 진영의 노예가 돼선 안 된다. 전국 '중도' 연대도 추진하겠다.
- 확실한 지지층이 없지 않은가.
-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현장에서 만나는 유권자가 지지층이다. 수입 3무(출판기념회·기부금·펀딩 금지), 지출 3무(유세차·스피커·율동 금지) 운동으로 선거혁명을 이루겠다.(박융수)
- 후보 난립은 중도에게 불리하다.
- 진보·중도·보수 3파전이면 해볼 만하다. 진보 측은 13세 중학생까지 경선에 끌어들여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학력 하락과 부패 등 조희연 적폐가 심각하다. 청산해야 한다.(조영달)
전국에 중도 깃발을 꽂은 후보는 10여 명. '보수 아성'인 경북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장규열(한동대 교수) 예비후보도 중도를 내세웠다. 그는 “교육은 이념이 아니라 넓게 담는 그릇이다. 교육 중심주의로 진영의 틀을 깨겠다”고 강조했다. 진보의 대부를 자처했던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돌연 중도를 표방하며 출마했지만,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는 평이다. 부산·강원·울산·충남·세종 지역에서도 중도가 등장했다. '태풍의 눈'이 될지, '찻잔 속 미풍'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정치 바람에 휘말린 이념 선거도 문제지만 돈 선거는 더 심각하다. 광역·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후보는 정당과 조직의 지원을 받지만, 교육감 후보는 선거를 개인 책임으로 치러야 한다. 법정 선거비 제한액도 광역단체장과 똑같다. 경기도가 41억원으로 가장 많고, 서울은 35억원, 인천은 13억원이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개인에게 과도한 비용을 부담시키면 당선 후 빼먹으라는 것과 같다"며 "전국에서 10여 명의 직선 교육감이 사법처리 된 게 그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빚더미에 앉아 패가망신한 경우도 적지 않다. 예비후보 때 쓴 돈은 개인 부담인 데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쓴 비용은 득표율이 15%를 넘어야 전액, 10~14%는 절반만 돌려받는다. 4년 전 경기도에 출마했던 김광래(70)씨는 30억원 이상을 썼지만, 득표율은 11%에 그쳤다. 결국 빚더미에 앉았다. 평생을 교육자로 지내다 농부가 된 그는 “전 재산을 탈탈 털어도 빚을 다 갚지 못했다”며 “교육감 선거는 돈 먹는 하마”라고 말했다. 당시 이재정 교육감의 선거비는 39억원(득표율 36.4%)으로 남경필 경기도지사(50.4%)보다 4억원이나 더 썼다.
선진국은 어떨까. 200년의 교육자치 역사를 가진 미국은 직선 지역이 13개 주에 불과하고, 영국·독일·핀란드도 모두 임명제다. 권대봉 고려대 명예교수는 “교육감을 직선으로 뽑는 나라는 우리가 거의 유일하다”며 “돈·정치 선거의 늪에 빠진 직선제의 폐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권자의 무관심과 반헌법적 논란 속에 10년째를 맞은 교육감 선거. 진보의 독주일까, 보수의 반격일까, 중도의 돌풍일까. 유권자들의 선택에 아이들의 미래가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