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이대로는 안 된다" 환경전문가들 쓴 소리 쏟아내

중앙일보

입력 2018.05.09 14:00

수정 2018.05.0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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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세먼지가 나쁨을 보인 지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바라본 하늘이 뿌옇다. [연합뉴스]

미세먼지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미세먼지 생성 원인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지 못한 탓이란 지적이 나왔다.
 
문길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은 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 환경한림원(회장 남궁 은) 주최로 열린 "미세먼지, 이대로 안 된다!"를 주제로 한 100분 토론회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문길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 김경록 기자

문 총장은 주제 발표에서 "국내 미세먼지 연구와 정책 상황을 선진국과 비교할 때, 미세먼지 생성 작용에 대한 과학적 이해도(연구 성과)는 선진국의 50% 수준에 머물고, 정책 우선순위 선정·시행은 50~60% 수준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환경한림원 토론회…문길주 UST 총장 등 발언
"당장 써 먹을 단기 대책은 없고 장기 대책만"

반면 미세먼지를 줄이는 기술 자체는 선진국의 70~90% 수준, 모니터링과 모델링은 선진국의 80%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문 총장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대책을 수립하려면 미세먼지의 배출·이동·반응·제거 등 각 과정을 과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총장은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환경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지구환경센터장을 시작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근무를 시작해 부원장과 원장(22대)을 지냈으며, 2016년 제4대 UST 총장에 취임했다.
 
문 총장은 "국내 미세먼지 오염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가장 높은데, 과학에 기반을 둔 정책 설명이 부족해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 불신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향후 고령화와 기후변화로 인해 미세먼지 문제는 더욱 악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문 총장은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단기적으로는 ▶저감 대책 시행 ▶범정부 미세먼지 위기관리 시스템 운용 ▶과학적 근거 재검토와 정책·연구 방향 제시 ▶미세먼지 전문 연구기관 설립 등을 제시했다.
또 장기 대책으로는 ▶정책 수립에 국민·전문가·이해당사자 참여 보장 ▶정부 내 미세먼지 총괄 창구 마련 ▶권역별 대기관리 체계 수립 ▶남북 환경협력을 통한 외부 영향 저감 ▶동북아 호흡 공동협의체 구성 등을 제안했다.

문길주 UST 총장이 주제발표를 통해 제시한 미세먼지 해법. [자료 문길주 UST 총장]

한편, 이날 허탁 건국대 화학공학부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한 '미세먼지 100분 토론'에는 구윤서 안양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선우영 건국대 환경공학과 교수, 신동천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장영기 수원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 김종률 환경부 대기환경정책관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미세먼지 100분 토론 내용
9일 한국환경한림원이 주최한 환경정책 100분 토론 "미세먼지, 이대로는 안 된다!"에는 다양한 참석자들이 참석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다음은 참석자들의 발언을 요약한 것이다.
 
▶김명자(환경한림원 이사장,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회장, 전 환경부 장관) = 미세먼지 오염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의 공통된 견해가 없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이해 당사자마다 생각이 다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다. 미세먼지 배출 특성, 생성 경로 등 배출원별로 정확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장영기(수원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 과거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특히, 고형 폐기물 재활용 연료(SRF)를 신재생에너지로 분류해 확대한 것은 대기관리의 정책 실패라고 생각한다. 전국 대기오염 배출업소 6만 개 시설 중에서 1~3종 대형 업체 6000여개를 제외하면 5만 곳 이상은 제대로 관리가 안 된다. 대기오염 관리의 기본 원칙은 "파악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다"이다. 현재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최첨단 기술보다는 기본적인 대기관리 정책을 제대로 현장에서 이행하는 것이다.
 
▶송상석(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 = 자동차 기술에 대한 과신이 문제였다. 기술이 나아질 것이라는 전제하게 배출량을 전망한 게 잘못이다. 새로운 차가 나와도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절대 줄지 않았다. 교통량을 줄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운전자들은 매연저감장치가 고장이 나도 그냥 달고 다닌다. 정책이 시행된 다음 그것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지속해서 모니터링해야 한다. 앞으로 미세먼지 무게보다 입자 개수가 더 중요한데, 입자 크기가 나노 수준에 이르면 휘발유 차량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승용차를 못 타게 하는 대신 대체 수단, 즉 대중교통을 확보해야 한다. 서울이나 부산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다른 지역은 문제다.
 
▶구윤서(안양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 미세먼지의 원인은 장거리 이동 외에 국내 요인도 있다. 중국에서 들어온 오염물질이 국내를 거쳐 다시 수도권으로 재진입하면 미세먼지 농도가 크게 높아진다. 국내에서도 배출원을 모르는 게 많다는 의미다. 경기도 등 외곽지역의 농도가 서울보다 높다. 소규모 사업장에 의한 배출, 농촌 지역 취사와 난방에 화목(땔감)을 사용하면서 미세먼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선우 영(건국대 환경공학과 교수) = 2014년 수도권 대기 질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 정부나 전문가들 그냥 넘어갔다. 긴급 대책을 추진해야 했는데, 그런 점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미세먼지 생성은 아주 복잡하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시대에 따라 대기오염 형태가 다르다. 중국의 변화 속도나 북한에 대한 정보 부족 등으로 인해 국외 요인에 대한 신뢰성이 낮다. 공장에서 직접 배출되는 것뿐만 아니라 대기 중에서 반응을 통해 2차 생성이 되는데, 2차 생성과 관련해서도 원인 물질을 배출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김종률(환경부 대기환경정책관) =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6월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했으나, 그때는 2차 오염에 대한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미세먼지 종합대책에서는 이 부분을 고려했다. 오는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지난해 발표한 대책을 보완해 발표할 계획이다.
 
▶신동천(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 지난해 미국에서 발표된 대기오염 개선을 통해 평균 수명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와 대기오염 개선을 위한 투자는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는 점을 우리도 새겨야 한다. 다양한 미세먼지 대책도 결국은 국민 건강 보호에 도움이 될까 하는 점으로 귀결이 돼야 한다.
 
▶문길주(UST 총장) = 미세먼지 연구에도 신진 과학자들이 더 들어와서 고정 관념을 탈피한 새로운 지식을 공급하고, 정부 정책 수립에도 기여해야 한다. 또 국립환경과학원도 측정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공개해서 학계 전문가들이 원인을 규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덕진(명지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 미세먼지 때문에 경유차 운행을 제한할 경우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 소규모 배출업소 단속을 강화해야 하지만 실행 가능할까에 대해 의문이다. 국민이 불편을 감수할까, 공무원들이 욕먹을 각오로 단속에 나설까. 환경부 대책도 중장기 대책일 뿐이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규용(전 환경부 장관) = 단속 등 법 집행을 엄격히 해야 한다. 단속 기기·기술·인력이 없다는 것은 문제다. 배출업소가 "대기오염 분야는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이다"라고 하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9월에 대책을 발표할 때는 2022년까지 배출량 30% 감축이라는 전체 목표 외에도 석탄 화력 등 부문별 저감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구체적 의지가 담겨야 시민들에게 협조도 구할 수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