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불후의 명곡’ 녹화 당시 후배 가수 린이 기타 연주에 맞춰 스캣을 구사하며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조용필은 “색다른 편곡이 무척 좋았다”며 극찬했다. 이어 “제 노래는 코러스도 제가 다 하는데 지금은 잘 나오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음”이라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날 많은 영감을 받은 그의 새로운 버전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조용필 노래 베스트 11]
1981년 3집 타이틀곡 '고추잠자리'
모성과 동심 부르는 노랫말로 인기
신승훈 '엄마야' 탄생 계기 되기도
“엄마야~” 왜 자꾸 그 노래가 듣고 싶지
그 후로도 조용필 선배의 노래를 들으며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의 팬임이 자랑스러웠다. 이제는 그의 후배가 되어 17년 동안 음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 싶지.” 선배가 이 노래를 불렀을 때 ‘엄마야’라는 단어가 이상하거나 낯설게 들렸었는지 생각해봤다. 이상하기는커녕 되레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준 가사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새 노래에 ‘엄마야’를 집어넣었다. 그 노래가 히트곡 중 하나인 ‘엄마야’다. 제목만으로도 당당함이 느껴지는 노래라고 자신한다. 이 노래도 ‘고추잠자리’처럼 누군가에게 추억을 되새길 수 있게 한다면 더 이상 기쁨이 없겠다. ‘고추잠자리’는 한마디로 모든 이를 추억에 빠져들게 하는 노래의 힘을 깨우쳐준 노래다. 내가 소신 있게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준 받침돌이기도 하다.
누구나 슬럼프를 겪는다. 출발의 순수한 열정도 시간 속에서 식어가게 마련이다. 그때마다 나를 지탱해준 것은 주변의 격려와 충고가 아니었다. 바로 노래 자체였다. 음악이 있어 계속 노래할 수 있었고, 그 노래의 중심에 선배 조용필이 있었다.
나는 3년 전부터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류의 중심에 있는 드라마ㆍ영화와 달리 오로지 음악으로 일본에 진출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지난 연말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1만3000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하기까지 참으로 힘든 과정을 거쳤다.
공연을 마치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아직 절반의 성공을 했을 뿐이다. 조용필 선배는 80년대 후반 한국음악의 불모지였던 일본에서 1년에 100회 이상의 콘서트를 했다. 혼이 담긴 열창으로 일본인에게 한국가요의 힘을 느끼게 했다. 한류는 싹수조차 보이지 않았던 때였다.”
지금도 택시를 타면 일본 기사들에게 “한국 가수를 아느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대부분 “조용필을 안다”가 아니라 “조용필을 좋아한다”고 답한다. 조용필이라는 콘텐트의 힘이다.
나는 짧지 않은 세월 음악을 해왔고, 또 나름대로 꿈을 이뤄가고 있다. 하지만 가요계에 큰 획을 그은 조용필이라는 거성을 생각하면, 나는 그 획의 점을 하나 찍은 것에 불과하다. 나도 데뷔 40년을 맞는 그날, 그 획을 완성할 수 있도록 오늘도, 내일도 마이크를 잡겠다.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의 초심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조용필, 그때 내 마음은…
1980년대 초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마음을 되돌아보는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요라고 해서 늘 사랑 아니면 이별만 노래하라는 법이 있는가.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사는 물론, 멜로디ㆍ사운드 등에서 틀을 깨는 가요를 만들고 싶었다. 가요에 ‘엄마야’라는 가사가 들어간 것은 ‘고추잠자리’가 처음이다. ‘엄마야’란 단어가 사람들에게 모성과 동심을 함께 불러일으켰다.
작사가 김순곤의 가사에 가성을 붙여 곡을 만들었다. 가성에 화음을 붙였는데, 그게 잘 안 나와서 가성 연습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코드도 내가 당시 좋아하던 것, 당시 가요계에서 거의 쓰지 않았던 것이다.
예상대로 반응이 빨리 왔다. TVㆍ라디오 인기순위에서 24주간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최장 기록이다. 동요적인 가사와 가성ㆍ화음ㆍ코드 등이 잘 어우러진 게 적중한 것 같다. 특히 청소년 층 사이에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가을 경기도 화성에서 첫 귀향 콘서트를 했는데, 이 노래가 특히 반응이 좋았다. ‘화성 소년’ 조용필의 추억과 감성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사가 김순곤의 가사에 가성을 붙여 곡을 만들었다. 가성에 화음을 붙였는데, 그게 잘 안 나와서 가성 연습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코드도 내가 당시 좋아하던 것, 당시 가요계에서 거의 쓰지 않았던 것이다.
예상대로 반응이 빨리 왔다. TVㆍ라디오 인기순위에서 24주간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최장 기록이다. 동요적인 가사와 가성ㆍ화음ㆍ코드 등이 잘 어우러진 게 적중한 것 같다. 특히 청소년 층 사이에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가을 경기도 화성에서 첫 귀향 콘서트를 했는데, 이 노래가 특히 반응이 좋았다. ‘화성 소년’ 조용필의 추억과 감성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