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고양시가 고향인 노인들 가운데에는 이와 유사한 기억을 간직한 이가 많다. 개성이 어린 시절 소풍 장소여서다. 고양 삼송리에서 자란 김정희(83) 할머니의 초등학교 5학년 때 개성 나들이 잔상도 ‘하얗고 정갈한 풍경’이다. “똑같이 생긴 집들이 줄지어 서 있고 개울 바닥의 모래조차 희어서 얕은 줄 알고 들어갔다가 빠져 허우적댔지요.” 김 할머니는 “선죽교 핏자국이 하도 선명해 물로 씻어보기도 했다”며 “죽기 전에 다시 가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10년 전 다시 ‘개성 소풍’을 갈 기회가 있었다. 개성공단 개발과 연계해 2007년 12월 개성관광 길이 열려서다. 하지만 차일피일하다 박왕자씨 피격사건 여파로 이듬해 11월 개성관광이 중단되는 바람에 그만 기회를 놓쳤다. 그 1년 동안 11만549명이 개성을 다녀왔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개성 소풍에 대한 기대가 번질 조짐이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설치되고 개성공단 재개 가능성이 점쳐지면서다. 북녘땅이지만 개성은 그야말로 지척이다. 남측 경의선 최북단 역인 도라산역에서 북측 판문역과 손하역만 거치면 개성역이다. 거리로는 22.9㎞다. 현재 경의선 광역전철이 대곡~문산 간 28.1㎞를 34분 만에 주파하는데 11개 역 정차시간을 감안한 표정(表定)속도가 시속 49.6㎞다. 도라산역에서 개성역까지 27분이면 닿는다는 얘기다.
남북은 2007년 각자 끊어진 경의선 철도를 복원해 문산~개성 간 화물열차를 1년 남짓 운행한 적이 있다. 당장에라도 개성행 열차 운행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해나가자는 게 남북 정상의 의중이다. 개마고원·백두산 트레킹은 좀 멀다. 당일치기가 가능한 개성 소풍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마음만 먹으면 수월할 듯싶다. 김 위원장의 결단으로 내일부터 남과 북의 30분 시차도 사라지지 않는가 말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