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북한의 백두대간 생태계 조사 결과가 남쪽으로 알려진 내용은 극히 제한적이다. 북한의 산림 훼손 실태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밝혀졌지만, 백두대간을 따로 구분한 조사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단 남한 쪽 백두대간부터 제대로 살펴보고, 그 보전 전략을 찾는 게 순서일 것이다.
1.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등뼈
백두대간 개념에는 백두대간 자체뿐만 아니라 정간(正幹) 하나와 정맥(正脈) 13개까지 포함된다.
하나뿐인 정간은 함경북도 지역을 가로지르며 두만강 유역과 동해안 유역으로 나누는 장백정간(長白正幹)을 말한다.
정맥은 백두대간에서 갈려져 나온 산줄기로, 북한에는 청북·청남·해서·임진북예성남 등 4개 정맥이 있고, 남한에는 한남·금북·금남·금남호남·호남·한남금북·낙동·낙남 등 8개 정맥이 있다. 나머지 한북정맥은 남북한에 걸쳐 있다. 남한의 9개 정맥 마루금을 이으면 2085㎞에 이른다.
백두대간 개념은 멀리 신라 말 선승(禪僧)들이 처음 내놓았고, 고려 시대를 지나면서 자리를 잡았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정통성을 강조하고, 신라·백제의 유민(流民)을 포섭하는 데 활용했다. 왕건의 조상은 백두산에서 시작했고, 지리산 산신들이 태조 왕건을 인정했다는 설화가 등장했다.
2. 자연과 기후를 나누는 역할
백두대간을 경계로 나뉘는 강원도 영동과 영서지방의 경우 나란히 붙어 있지만, 기후와 생태계가 아주 큰 차이가 난다. 백두대간은 겨울철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주기 때문에 강원 영동 지방은 영서지방보다 훨씬 겨울이 따뜻하다.
또 서쪽 호남지방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지만, 백두대간 동쪽의 영남지방은 겨울에 눈이 적고 건조하다.
백두대간은 태풍까지도 막아준다. 2012년 7월 전남 완도에 상륙했던 태풍 ‘덴빈’은 육지에 올라서는 백두대간(소백산맥)에 가로막혀 북상하지 못했다. 대신 백두대간 벽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해 당일 자정 무렵 동해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2002년 8월 말 태풍 ‘루사’ 역시 남해안에 상륙했지만, 백두대간을 넘지는 못했다. 강릉에 하루 870.5㎜의 폭우가 내렸지만, 백두대간 너머 내륙 쪽인 홍천의 강수량이 62.5㎜에 그쳤다.
백두대간은 푄현상을 가져오기도 한다. 푄(Föhn)현상은 차고 습한 공기 덩어리가 산맥을 넘으면서 덥고 건조해지는 현상이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푄현상 때문에 고온 건조해지면 영서 지방의 기온이 높아지곤 한다. 반대로 4월 초 이동성고기압에서 생긴 서풍이 백두대간을 넘을 무렵이면 동해안의 양양과 간성 주민들은 긴장한다. 양양과 간성 사이에서 부는 ‘양간지풍(襄杆之風)’이 워낙 강풍이어서 작은 불씨라도 있으면 큰 산불로 번지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은 한민족 고유의 문화, 생활방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백두대간은 민족정기의 상징으로, 토속신앙과 불교 문화가 어우러져 한반도 고유의 문화를 형성하도록 했다.
동양대 신준환 초빙교수(전 국립수목원장)는 “최근 등산객이 중심이 돼 백두대간을 강조하다 보니 마루금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실제 조상들이 생각한 백두대간은 산계(山系) 개념”이라며 "백두대간은 선이 아니라 영역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은 개울이 만나서 하천이 되고, 큰 강이 되는 수계(水系)와는 반대로 백두대간이라는 큰 산줄기가 정맥으로 이어지고, 동네 뒷산의 작은 산줄기까지 이어지는 것이 바로 백두대간 ‘산계’라는 것이다.
3. 한반도 생태계의 보물창고
백두대간 보호구역 면적은 남한 전체 면적의 2.7%에 불과하지만 이곳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한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 전체에서 확인된 관속식물(고등식물) 4881개 분류군의 38.3%인 1867개 분류군이 백두대간에서 관찰되고 있다. 희귀식물의 18.7%인 107종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반달가슴곰과 산양 등 포유류 39종과 조류 115종, 양서·파충류 27종이 깃들여 살고 있다.
2010년 산림청 녹색사업단 조사에 따르면 백두대간에는 가슴높이 둘레가 200㎝ 이상인 나무가 28종 800여 그루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다. 강원도 구룡령~단목령 사이에 있는 피나무는 가슴높이 둘레가 608.8㎝에 이른다.
하지만 백두대간에도 외래종이 침입하고 있다.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개망초·달맞이꽃 등 외래·귀화식물이 69종이나 확인됐다. 과거 197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심었던 일본잎갈나무(낙엽송)도 논란이 되고 있다. 태백 만항재~태백산 구간에서만 700㏊ 산림 중 25%가 일본잎갈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4. 지구온난화로 위협받는 침엽수림
또, 한국환경생태학회의 조사에서도 덕유산에서는 구상나무를 비롯한 아고산대 상록침엽수림은 2002년 43.2㏊에서 2011년 38.8㏊로 10.1% 감소했다.
기후변화로 폭우가 잦아지면서 백두대간에서도 산사태가 빈발한다. 녹색연합이 지난해 8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리산 동부권역에서만 36개의 산사태 발생 지점이 확인됐다. 설악산에서도 2006년 7월 태풍 때 발생한 것을 비롯해 250여 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산림·생태 전문가들은 “백두대간과 정맥에서 나타나는 침엽수림의 감소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한반도 생태계 변화를 나타내는 ‘바로미터’인 만큼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침엽수림이 사라지는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 보호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5. 개발에 신음하는 산줄기
백두대간을 훼손하는 시설은 모두 270곳이 넘는다. 대표적인 것이 도로다. 백두대간을 직접 관통하는 도로는 모두 65개로 2010년 63개에서 터널 두 개가 늘었다. 평균 7.8㎞마다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도로가 들어선 셈이다. 도로를 제외하고도 고랭지 채소밭 120곳, 목장 10곳, 광산 14곳, 채석장 9곳, 군사시설 7곳 등이 백두대간 보호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고랭지 채소밭의 경우 백두대간보호지역 내에서만 120㏊에 이른다.
또, 남한의 9개 정맥 마루금 2085㎞의 주변에서도 1600여 곳의 훼손지가 발견되고 있다. 공원묘지, 풍력발전단지, 골프장도 훼손 원인이다. 백두대간과 달리 특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정맥에는 임도(林道)를 포함해 모두 768개의 도로가 관통한다. 평균 2.63㎞ 간격으로 도로가 지나간다.
한국임학회의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백두대간 등산로 중에서 334개 지점은 심각하게 훼손돼, 나무뿌리가 노출되거나 노폭이 확대되고, 암석이 노출돼 안전사고 발생 위험까지 생기고 있다.
6. 생태통로로 단절을 극복
환경부와 산림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도로로 끊어진 백두대간을 연결하기 위해 생태 이동통로를 설치하고 있다. 2012년에 이화령(충북 괴산), 2013년 육십령(전북 장수군)에 생태 이동 통로를 설치했다. 또, 지리산 정령치와 전북 장수군의 육십령, 경북 문경시의 벌재에도 생태 이동통로를 완공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등산객 편의 위주로 건설되고 있는 생태 이동통로를 생태계의 연결이나 야생동물 보호에 초점을 맞춰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등산로 훼손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 녹색연합 서재철 전문위원은 “해외에서도 핵심 생태계 보호구역에 등산객을 무방비로 출입시키는 경우는 별로 없다”며 “백두대간도 산행 예약제를 통해 이용객 숫자를 제한하거나, 가이드를 동행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백두대간뿐만 아니라 9개 정맥 마루금 주변도 핵심 보호구역이나 완충구역으로 지정해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마루금 양쪽 300m까지는 핵심구역으로, 마루금 양쪽 300~1000m까지는 완충구역으로 지정한다면, 핵심구역 15만㏊와 완충구역 26만㏊ 등 모두 41만㏊가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백두대간과는 달리 정맥 주변에서는 주민 재산권 차원에서 소규모 개발사업은 어느 정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반론도 있다.
결국 보호구역 확대 지정 같은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도 필요하지만, 무분별한 개발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려면 지역주민과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해서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