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반도는 1950년 북한의 침공으로 발생한 한국전쟁 이후 휴전 상태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휴전을 합의한 정전협정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대체해 전쟁을 종식하자는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가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이를 섣부르게 추진했다가 큰 낭패를 본 사례가 적지 않다. 이 낭패는 다시 전쟁을 유발해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국토 황폐화를 불러왔다.
한반도 전쟁 끝나지 않은 휴전 중
섣부른 평화협정으로 낭패 적잖아
독일 로카르노조약 깨고 침공
영·독 뮌헨협정, 2차대전 불러
북핵 완전 폐기 선행돼야
유엔사·연합 해체 우려
남북 간에 진정한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면 선행돼야 할 과제가 많다. 우선 남북한 관계 설정이다. 남북이 서로 국가로 인정하는 게 통일을 위한 조치다. 그렇지 않으면 남북이 서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주장하고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필수적인 조치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다.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상태에서 평화협정 체결은 언제든 북한의 핵위협으로 평화가 깨질 수 있는 구도다. 더구나 핵무기 없는 한국은 속수무책이다. 북한의 화학무기와 생물학무기의 폐기도 중요하다. 북한은 최대 5000t의 화학무기를 갖고 있다. 이밖에 평양-원산 이남에 70%가 배치된 북한 군사력도 후방으로 물려야 한다. 유엔평화유지군에 의한 평화협정 이행의 감독도 필수다.
이러한 평화적 조건들은 꼭 평화협정을 체결해야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이라도 남북기본합의서(1992)에 따라 북한이 노력하면 가능하다. 사실 지금 한반도 안보 불안은 북한의 핵 개발과 적화통일 목표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정부가 생각하는 평화협정의 핵심 내용은 남북한 기본합의서에 모두 포함돼 있다. 남북 간의 상호 인정(제1조), 파괴 및 전복 행위 금지(제4조), 무력 불사용(제9조), 평화적 해결(제10조),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제11조) 등이다. 여기에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1991) 합의도 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유엔군사령부(UNC)와도 연계돼 있다. 유엔사는 한국전쟁 때 북한을 물리치기 위해 파견된 유엔 회원국 부대들을 통제하기 위해 유엔결의로 설치한 부대다. 때문에 종전이 선언되면 유엔사가 한국에 주둔할 근거가 취약해진다. 현재 유엔군의 규모는 작지만 정전협정 당사자로서 평화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왔다. 북한이 다시 남침하면 별도의 유엔 결의 없이 유엔 회원국들은 군대를 파견할 수 있다. 우리에게 매우 유리한 시스템이다. 또 유엔사는 전시임무 수행을 위해 7개의 주일 미군기지를 사용할 수 있다. 과거 공산권에서 유엔사 해체를 집요하게 요구했던 것도 유엔사만 없어지면 한국의 공산화가 쉽다고 봤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한미연합사가 있어서 유엔사가 해체돼도 문제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유엔사와 달리 한미연합사는 한·미가 만든 부대여서 법적 지위가 낮다. 또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해 연합사 해체 요구가 나올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에 전작권 환수를 추진 중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전쟁 억제와 유사시 한국 방어에 관한 미군 책임이 없어진다. 그 후속 조치로 주한미군의 역할과 규모가 축소되고, 결국 철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하지 않았다지만 유엔사와 연합사 해체는 주한미군 철수나 다름없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평화협정 체결로 유엔사가 해체되면 비무장지대(DMZ)도 남북한 간의 관리로 전환된다. 그럴 경우 분쟁 발생 때 상황이 악화될 소지가 있고, 협정을 위반해도 중재할 제3자가 없어 상황관리가 곤란해진다. 평화를 보장한다는 평화협정이 되레 한반도 평화 보장의 결정적인 장치를 제거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한반도 적화통일 포기와 핵무기 폐기가 없는 상태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의 남침 야욕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선행조치 없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마법처럼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오늘 정상회담에서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왔던 종전선언 대신 상징적인 평화선언으로 대체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평화는 평화협정이 아니라 이를 지키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과 힘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박휘락
국방부 군비통제관실 대북정책과장과 국방대 교수를 거친 군사전략·정책 전문가다. 북핵 대비 전략과 전작권 전환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전 국방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