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지금은 전반적인 북한 비핵화 과정의 극히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하다. 북한의 완전하고 포괄적인 비핵화는 단순한 동결이나 모라토리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평양이 보유한 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의 처분, 핵시설 폐쇄 또는 철거, 이미 무기화됐을지 모르는 핵탄두와 미사일 해체, 더 나아가 핵·미사일 실험 관련 데이터와 기술·인력의 폐기 및 관계자의 전직(轉職) 등과 같은 다양한 과제가 남아 있다. 단계마다 이런 문제들이 실질적으로 이행됐는지를 따지는 사찰과 검증이 수반돼야 함은 물론이다.
4·27회담에 북 비핵화 기대감
모라토리엄은 비핵화와 달라
북, 핵보유 지위 요구할 수도
조급증 벗어나야 항구적 평화
알려진 바와는 달리 북한은 ‘병진(竝進) 노선’을 폐기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병진 노선의 기조 하에서 경제발전에 더 신경을 쓰겠다고 한 것뿐이다. 4월 21일자 로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건설과 핵 무력 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역사적 과업들이 관철되었다는 것을 긍지 높게 선언했다”는 설명을 달았다. 병진 노선이 이미 달성됐다고 보았다는 의미이다. 또한 “어떤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로켓 실험도 ‘필요 없게’ 되었으며”라고 주장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결국 앞으로 남북대화나 북·미 협상에서 북한이 자신들의 요구를 내걸 기본 바탕이 ‘핵 보유국’ 지위 인정과 ‘핵 군축회담’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핵 군축 회담’과 ‘북한 비핵화’가 뭐가 그리 다르냐고 강변할 수도 있다. 이 둘은 한·미가 지불해야 할 대가와 보상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설사 워싱턴이 잠정적인 문제 해결 선에서 타협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북한의 선의에 기댄 불안한 평화가 강요된다.
미사일 위협의 해소 역시 숙제로 남는다. 북한이 ICBM뿐 아니라 중장거리 미사일의 ‘발사 실험’ 중지를 준수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2017년 11월 29일 발사한 ‘화성-15형’과 7월 28일 발사한 ‘화성-14형’에 국한된다. 평양 스스로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켓’이라고 언급한 ‘화성-12형’은 이미 작년에 실전 배치됐다고 선언했다. 화성-12형에 적용된 기술과 두 유형의 ICBM 기술은 기본적으로 유사하다. 이 딜레마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모든 것들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대화와 협상에 있어 상대방이 선의로만 행동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우리의 협상력을 저해한다. 정부의 가장 큰 미덕이자 의무는 상대방의 카드를 적절한 값 또는 가장 싼 값에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답답할 정도로 신중해야 한다.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 중국의 한 농부가 벼가 빨리 자라길 바라는 조급한 마음에 손으로 벼를 잡아 뺐다가 결국 말라죽게 만들었다는 고사다. 이 시점에서 생각해볼 고사다.
우리가 혹시 평화에 대한 기대와 염원이 지나쳐 일종의 착시 현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말이다. 착시와 조급증을 자제해야 평양을 진정한 비핵화로 이끌 수 있다. 그래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구현할 수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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