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마음까지 먹을 바에야 그냥 회사를 박차고 나가면 될 것을, 다카시는 “겨우 정직원으로 들어왔는데 관두는 게 쉽지 않다”며 온갖 부당한 대우를 그냥 받아들인다. 사실 다카시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인이 다 마찬가지 아닐까. 머릿속에서 그리는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부당한 갑질에 당당히 항의해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폭로 동영상 속 공사현장 직원처럼 도망가는 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하다.
문제는 복종의 결말이 가해자나 피해자, 그리고 회사 모두에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복종해서 마음이 편해지기는커녕 심적 고통은 더 깊어가고 그로 인해 자존감 저하와 근로의욕 상실까지 겪어야 한다. 이번 대한항공이나 셀레브 사건에서 목격했듯이 회사는 신뢰 하락으로 허우적대고 가해자 역시 끝이 좋을 수 없다. 맹목적 복종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이유다.
팔로어십 연구의 개척자 아이라 샬레프가 쓴 『똑똑한 불복종』에는 맹인 안내견 얘기가 나온다. 안내견은 처음엔 명령에 복종하도록 훈련받지만 그다음엔 불복종, 다시 말해 주인을 따르는 게 명백하게 위험할 땐 복종하면 안 된다는 걸 배운다. 재밌는 건 안내견의 불복종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복종만 하는 안내견 때문에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 못해 결국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다고 한다. 내 이익을 위해서라도 불복종을 배우고 또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시 영화 얘기. 노예처럼 복종만 하던 다카시는 “이 정도도 못 견디는 근성 없고 물러터진 자식”이라고 마지막까지 막말을 퍼붓는 부장에게 소심하면서도 대담한 불복종을 행한다. 그리고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