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양이 알러지라니! 나무와 같이 살아보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공원에서 만난 나무를 손으로 그렇게 만져대도 아무렇지 않았고,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 집에서 몇 달간 지낼 때도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물을 너무 사랑하지만 알러지 때문에 키우지 못한다는 흔한 고민은 다 남의 얘기였다.
[백수진의 어쩌다 집사]
(8) 말 할 수 없는 비밀
왜 이제야 알러지가 나타난 것일까. 냥줍을 하기 전에 미리 알고 고민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다르다. 나무와 함께 꽃길만 걸을 줄 알았는데 몰랐던 복병이 튀어나오니 슬프기까지 했다.
친구의 집에서 내가 멀쩡했던 이유에 대한 나름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첫째, 리옹이(친구네 집 고양이)는 나에게 뽀뽀를 하지 않았다. 둘째, 리옹이는 내 옆에서 자지 않았다. 셋째, 집이 넓었다. 바꿔 말하면 좁은 원룸에서 얼굴 박치기와 뽀뽀를 밥 먹듯이 하고 잘 땐 옆에 꼭 붙어서 자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다.
나무가 누군가.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던 개냥이(강아지처럼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다. 집냥이가 된 후 업그레이드된 애교는 말도 못한다. 내가 외출 후 집에 들어오면 겉옷을 벗고 손을 씻는 동안 발밑을 졸졸 따라다닌다. 퇴근 세리모니를 해달라는 것이다. 양 볼을 붙잡고 코를 맞대고 뽀뽀를 해줘야 ‘오케이’하고 돌아간다.
컨디션에 따라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뽀뽀를 하고 나면 대개 나무와 닿았던 코끝이나 입술 윗부분이 잠시 붉게 변한다. 한쪽 눈두덩이 부어서 다래끼가 난 줄 알았는데 다음 날 아침 감쪽같이 나았던 적도 있었다. 눈 쪽에 알러지가 올라와 순간적으로 부어올랐던 것이다. 주말 내내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나무와 같이 있으면 딱히 접촉을 하지 않아도 코가 유독 간지럽다.
물론 병원도 갔었다. 이비인후과와 안과에서 약도 다 타봤다. 진료를 받을 때면 매번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모드로 질문을 하곤 한다.
“저처럼 알러지 있는데 고양이 키운다는 사람 많죠…?”
“네~”
“심할 때 약 먹어가면서 지내면 괜찮겠죠…?”
“원인이 없어지지 않으면 알러지도 사라지지 않아요~”
동지들의 진심 어린 조언이 필요했다. 수십만 명의 집사가 모여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문했다. 역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집사는 적지 않았다. 잠시 후 고생할 걸 알면서 고양이와의 스킨십을 포기하지 못하는 바보도 나 하나가 아니었다.
집사 선배들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영양제의 힘을 빌려서라도 면역력을 기를 것, 운동을 할 것, 가려운 피부에 보습을 잘 해줄 것, 청소를 자주 할 것, 죽은 털(이미 빠졌는데 고양이 몸에 붙어 있는 털)을 제거하는 빗질을 자주 해줄 것 등등…. 나무를 바꿀 수는 없으니 내가 바뀌고 함께 쓰는 공간이 바뀌어야 했다. 원룸 계약이 끝난 뒤 두 배 가까이 넓은 집으로 이사한 이유도 8할이 나무였다. 집이 넓어진 뒤로는 확실히 알러지 증상이 나아졌다.
스킨십 빈도를 줄여야 한다는 조언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지킬 자신이 없다. 피부는 잠깐 가렵고 말지만 고양이를 안았을 때, 고양이와 눈을 마주하고 코를 부빌 때 받는 위안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친 하루를 마치고 귀가한 직후에는.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나무 앞에서 가끔 알러지 약을 까먹는 것 외에는 절대 티를 내지 않을 생각이다. 나무가 누나의 알러지를 알고 의기소침하거나 더이상 뽀뽀를 해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건강에 좋다는 걸 다 챙겨 먹고 귀찮음을 이겨내고 운동을 할지언정 나무와의 뽀뽀를 포기할 순 없다. 물론 이 녀석은 내가 알러지가 있든 없든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을 들이댈 가능성이 더 높긴 하지만…. 어쨌든 나무에게는 비밀이다.